최근 미국과 영국 여성 사이에서는 프랑스 여성 미레이 쥘리아노가 쓴 책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라는 책이 인기라고 한다. 한데 이 책이야말로 전세계에 퍼져있는 ‘프랑스 환상’을 마케팅으로 잘 연결해 성공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프랑스 여성이 굳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날씬한 이유를 들었다. 제철 음식을 즐기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요리하기를 즐기는 프랑스식 식습관 덕분이라는 것. 책에 대한 반응도 볼 만했다. 미국에서는 “프랑스 여자는 담배를 많이 피우니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찐다”는 반박 칼럼도 나왔다. 물론 양쪽 다 맞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책은, 욕 먹으면서도 시청률 높은 문제성 드라마처럼 잘 팔린다.

얼마 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30개 회원국의 경제·사회지표를 비교한 통계집을 낸 게 있다. 비만 통계를 낸 28개국 중에 제일 뚱뚱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15세 이상 미국인 100명당 30.6명꼴로 비만이다. 3위를 차지한 영국도 만만치 않아 100명당 22.4명이 비만이었다. 비만 인구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인 프랑스(9.4명)의 식습관이며 라이프스타일이 ‘웰빙’으로 포장돼 불티나게 팔릴 법도 하다.

그런데 OECD 통계에서 가장 날씬한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9.1명), 이탈리아(8.6명), 노르웨이(8.3명), 스위스(7.7명), 일본(3.6명)이 더 날씬하며, 최고 날씬한 나라는 바로 한국(3.2명)이었다. 프랑스 비만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다.

비만도는 나라별 식습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프랑스 음식이 한국 음식보다 더 건강식이라고 절대 말 못하겠다. 한국 음식이 짜다지만 파리에 온 한국 사람 중에는 프랑스 요리가 너무 짜서 입에 못대는 경우도 허다하다. TV 요리채널에서 소스마다 버터가 뭉텅뭉텅 들어가는 걸 보면 프랑스 요리 먹고 싶은 생각이 절로 달아난다. 식사하고 후식으로 생과일을 그냥 먹는 우리와는 달리, 설탕에 듬뿍 절인 과일을 케이크로 만들어 디저트로 먹는다.

집 근처의 까르푸 계산대에 서서 앞뒤 사람 장바구니를 둘러봐도 신선한 식품을 가장 많이 사는 건 언제나 우리 집이다. 미국에 비하면 프랑스식 식습관이 건강식일지 몰라도 잔손질 많이 가는 야채 다듬고, 따끈한 밥상 차리느라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아직도 한국 주부들이 으뜸이다.

유럽 음식 중에도 마찬가지다. 버터, 설탕, 소금이 듬뿍 들어간 프랑스 요리보다 올리브유와 식초로만 맛을 낸 신선한 샐러드며, 마늘과 토마토를 많이 먹는 이탈리아 요리가 더 건강식이다.

그런데도 프랑스 여자의 식습관이며,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나라에서 잘 팔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프랑스보다 훨씬 날씬한 나라이긴 해도 ‘한국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탈리아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노르웨이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는 책이 나왔다면 미국이나 영국에서 그리 불티나게 팔렸을까? 책은 프랑스의 삶이 멋지고 낭만적이며, 프랑스 여자는 날씬하고 매력적이라는 특유의 이미지와 환상 덕을 많이 봤다. 프랑스는 세계 여성의 허영심과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상품가치 높은 ‘브랜드’다.

(강경희 조선일보 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