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지 10년만에 열린외국인당 대변인 됐어요. 너무 기뻐서 와이프 봉숙이한테 축하해 달라고 했어요. 봉숙이 저를 째려보더니 돈도 못 벌어오면서 정치하려고 한다며 헤드락 걸었어요. 또 한국에선 남자가 정치하겠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말려야 한다며 로우킥 했어요. 부메랑 훅 날렸어요. 봉숙이 요즘 드라마는 안보고 매일 이종 격투기만 봅니다. 뭡니까 이게? 봉숙이 나빠요.”

“뭡니까 이게? ○○○ 나빠요”를 2004년 최고의 유행어로 만든 신인 개그맨 정철규(24)씨가 본격적인 시사패러디 개그에 뛰어 들었다. 본명보다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라는 캐릭터로 더 잘 알려진 정씨는 지난 7월부터 한 인터넷 패러디 뉴스 N2N(news.paran.com/sfunny)에서 ‘열린외국인당 대변인 블랑카’로 변신해 네티즌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고 있다.

블랑카는 “오늘도 기자 한 명밖에 안올 정도로 열린외국인당 열외당하고 있어요”란 불평으로 대변인 브리핑을 시작한다. YS의 안풍(安風) 비자금에 대한 얘기가 배드민턴 치는 일화로 새고, 연쇄살인범 체포 논평은 열외당사 주변 연쇄방뇨범 얘기가 되는 등 천방지축식 개그가 펼쳐진다. 브리핑 끝에는 새까만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와 “희망흑돼지 모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다.

정치권의 비리와 외국인노동자의 고충 등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도 곁들인다. “열린우리당에 선앤문 있어요. 한나라당에 차떼기 있어요. 열린외국인당 아무것도 없어요. 기업에서 돈 주는게 아니라 우리 돈 다 떼먹습니다. 뭡니까 이게?”

까무잡잡한 피부와 어눌한 말투가 영락없는 동남아계 외국인처럼 보이는 정씨를 4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정씨는 “솔직히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딱딱한 시사문제를 비틀어 풍자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서 “제 개그를 통해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조금이라도 긁어줄 수 있다면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시사 패러디에 처음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정씨의 캐릭터는 외국인 노동자를 개그 소재로 다뤘다는 것부터 다분히 시사적이었다. 정씨는 “불법 외국인 체류자 출국이 이슈가 됐던 지난해 말 뉴스를 보다가 문득 외국인 노동자로 변신해 그들의 애환을 개그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블랑카’라는 이름은 정씨가 좋아하는 전자오락의 괴물 캐릭터에서 따왔다.

경남대 전기전자공학부 99학번인 정씨는 2000년부터 3년간 경남 창원공단에서 산업체 병역특례요원으로 근무했다. 냉장고 부품 조립공장에서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중국 등 외국인 노동자 20여명과 함께 일했다. 정씨는 “블랑카가 쓰는 어눌한 한국말은 그때 외국인들과의 같이 생활하면서 익힌 것”이라며 “늘상 듣는 말투라 그게 색다른 줄도 몰랐는데 사람들은 너무 재미있어 해 놀랐다”고 말했다.

정씨는 “산업특례로 근무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집으로 불러 같이 술도 먹고 잠도 많이 잤다”며 “중국인 친구들과 친해져 회사측과 중국인 노동자들간에 문제가 있을 땐 그들에게 배운 중국어로 통역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슴 아픈 장면도 많이 봤다고 말을 이었다.

"외국인이니까 당연히 한국말이 서툴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은 말이 어눌하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멍청하게 보고 무시를 하는 거예요. 전 그게 제일 싫었어요.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이 일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무조건 반말을 하고 천대를 해요. 때리는 경우도 봤구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기가 불이익을 당해도 그 사실을 신고하면 계속 일을 못할까봐 대부분 그냥 묻어두는 경우가 많구요. 제가 외국인 노동자 차별 문제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지는 못해도 블랑카의 입을 통해 이런 불합리와 차별이 좀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경남 창원이 고향인 정씨는 튀는 외모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개그맨의 꿈을 키웠다. 까무잡잡한 얼굴 덕에 고1때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는 한국인 승무원도 계속 영어로 말을 걸었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1999년 MBC 신인개그맨 공채에 응시했는데 1분도 안돼 퇴짜를 당하기도 했다. 산업체 병역특례를 마친 작년 7월 무슨 일이 있어도 개그맨이 되겠다며 무작정 상경했다.

“24만원을 주고 고시원에 방을 잡았는데 방이 어찌나 작은지 누워서 팔을 옆으로 뻗을 수 없을 정도였죠. 한달 동안 계란후라이로만 밥을 먹는데 집생각 가족생각에 어찌나 서럽던지… 한달 만에 다시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던 정씨는 올해 초 일반인들이 출연해 유머 감각을 뽐내는 KBS 위성TV ‘한반도 유머 총집합’ 무대에서 선보인 ‘블랑카’ 개그가 한 방송작가의 눈에 들어 지난 2월 KBS ‘폭소클럽’에 출연, 꿈에도 그리던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했다. 정씨의 첫 방송이 나간뒤 ‘너무 재밌고 신선하다’ ‘도대체 블랑카가 누구냐’ ‘한국인이냐 외국인이냐’ 등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가 회사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내용의 개그가 외국인 노동자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체에서도 항의가 들어왔다. 결국 방송 3회만에 가정문제로 소재를 바꿔 ‘아내 봉숙이’를 개그 소재로 삼자 이번에는 전국의 ‘봉숙이’들이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인기 개그맨이 된 것을 언제 실감했느냐고 물으니 정씨는 “인터넷 검색창에 ‘정철규’를 넣으면 내 사진과 프로필이 뜨는 게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내 이름을 건 버라이어티쇼를 진행하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당차게 장래 목표를 밝혔다.

블랑카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에 정씨는 곧 스리랑카 홍보대사로 임명될 예정이다. 현재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측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받았고 스리랑카 본국의 승인만 기다리는 중이다. 또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호를 다루는 공익광고에 출연하는 일도 추진중이다. 또 열린외국인당 대변인으로 각 정당 당사 앞에서 패러디 개그를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