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등장한 ‘빛과 소금’이란 밴드의 노래 ‘샴푸의 요정’은 상큼한 충격을 던졌다. 산울림이나 들국화가 그랬던 것처럼 그 이전 우리 대중음악에서 찾기 힘든 몽환적 사운드와 편곡이 돋보인 음악이었다. 그러나 때맞춰 불어 닥친 댄스 광풍에 그 빛도 꺼지고 소금도 맛을 잃었다.
이제 막 첫 음반을 내놓은 장기호 밴드는 그 ‘빛과 소금’의 리더 장기호가 새로 만든 팀이다. 그간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를 공부하고 돌아온 그와 이정철(기타), 박근혁(드럼), 김장원(키보드)이 2년 전쯤 뭉쳐 새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정철은 색소폰 주자 대니정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 박근혁은 장기호와 버클리에서 만났다. 김장원은 경희대 작곡과를 나와 뮤지컬 세션 등으로 활동했다. ‘빛과 소금’의 또 다른 멤버 박성식은 호서대 교수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CD를 걸고 첫 곡으로 ‘웬 아이 싱크 오브 유(When I Think of U)’가 흘러나오는데, 예전 ‘빛과 소금’을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 이상으로 들뜨게 만든다. 재즈 크림을 듬뿍 얹은 팝·록 쿠키를 먹는 느낌이다.
“누구와 비슷하다, 크리에이티브가 없다, 그런 소리 듣지 않는 우리만의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좀 어렵게 들릴지도 몰라요. ‘빛과 소금’ 음악이 감성에 치우쳤다면 ‘장기호 밴드’는 감성과 이성이 잘 조화된 음악이라고나 할까요.”
장기호는 현재 CBS 라디오에서 ‘장기호의 CCM캠프’란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음반시장의 위기가 뮤지션들에겐 기회라더니, 그의 재등장과 자신 넘치는 출사표가 듬직하게 들린다.
“일본 퓨전재즈 밴드 ‘카시오페아’만 해도 네 명의 음악이 아주 치밀하게 계산돼 있어요. 확실하게 분담한 음악이 하나의 통일된 사운드를 내죠. 국내엔 그런 밴드가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그런 팀을 지향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음악의 악보가 굉장히 어려운 게 바로 그런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의 한국 대중음악론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국음악은 왜 이렇게 나이가 어린가. 엔터테이너는 있지만 아티스트는 왜 없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술은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새 음반의 포크 감성 짙은 장기호의 보컬과 재즈·펑크·록이 맛있게 버무려진 노래들은 한 곡도 놓치기 아쉽다. 크리스천인 장기호가 재즈로 편곡한 찬송가 ‘주의 친절한 팔에’와 ‘노바디 노우즈(Nobody Knows)’ 역시 “이 노래가 이렇게 바뀔 수 있나” 하는 호기심으로 들으면 종교와 상관없이 호감이 간다. 이 밴드의 노래를 듣지 않고 “한국 대중음악엔 들을 노래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게으른 변명일 뿐이다.
(한현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