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하, 문천식 등이 출연하는 MBC ‘코미디하우스’의 인기 코너 ‘노브레인 서바이버’.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바보’ 정준하는 “설 아침에 세배하면 주는 것은?”이란 질문에 “팁”이라고 대답한 뒤,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심심해서 인터넷 채팅을 하다가 ID가 ‘거북이’인 그녀를 만나러 나갔는데, 그녀는 정말로 거북이었다고 말하며 울상을 짓기도 한다.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되지만, 딱히 그의 말이 틀린 것 같지도 않다.

‘라이브의 여왕’. 허리 22인치, 키 167cm의 잘 가꿔진 몸매를 지닌 김미현은 무대에서 화려한 율동을 선보이지만, 입에서 제멋대로 나오는 노래 ‘오리 날다’는 앉아서 참아내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 ‘웃지마’에서는 중견 최양락·조혜련·이경실이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가 싶더니, 기묘한 분장으로 ‘흉물’이 돼버린 홍기훈이 나타나 스튜디오를 뒤집어버린다.

매주 토요일 방송되는 MBC TV ‘코미디하우스’가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치한 소재를 ‘의외성(意外性)’과 적절히 버무려 인기를 끌고 있다. 닐슨 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지난달 31일 시청률은 14%. 주말 황금시간대인 토요일 오후 7시에 편성돼 다른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과 경쟁에서 밀리기만 하더니, 새해 접어들며 근소한 차이로 이들을 앞서기도 한다. 작년 12월 이전까지만 해도 시청률 10%를 넘기에 숨이 벅찼다.

“저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에요” “안 좋은 추억이 있어요” 같은 유행어들을 만들어낸 정준하가 선봉에 섰다면, 작년 말 새로 생긴 코너 ‘웃지마’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최근 이 코너에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으로 변신했던 조혜련은 “방송 경험 12년여 만에 이런 폭발적인 반응은 처음이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반전(反轉)’을 위해 코너 시작 후, 3분쯤 지난 뒤 나타나는, ‘변신 코미디언’들의 외양은 ‘엽기’라는 말로도 감당이 잘 안 된다. 게다가 동료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리는 코미디언들의 모습이 ‘양념’이 돼 시청자를 자극한다.

조혜련은 “‘여자 연예인이 저렇게 처절하게 연기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의견 등 방송 직후, 5시간여 만에 1000여건의 시청자 의견이 인터넷에 올라왔다”며 “그동안 드라마 출연에 전념하기도 했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통 코미디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미디 하우스’는 ‘개그콘서트’ 성공 이후, 큰 흐름이 돼버린, 연극 스타일의 ‘공개 코미디’와 궤를 달리 한다. 50여명 정도의 방청객 앞, 또는 비공개로 녹화가 이뤄진다. 80년대 ‘유머1번지’ ‘일요일밤의 대행진’ 등 ‘대박’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선택했던 방식. 제작진은 청중의 반응에 따라 툭툭 끊어지듯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고, 시간·장소의 제한을 받는 ‘공개 코미디’와 달리 다양한 방식과 구성을 실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엽기’ 수준의 발상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극단적 콘텐츠에 익숙해진 네티즌들의 호응 탓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정준하는 “가벼운 입담 중심의 개그 쪽에 실려 있던 무게중심이 코미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며 “중견 코미디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코미디하우스’의 성공이 반갑다”고 말했다.

안우정 PD는 “낙차가 큰 반전을 프로그램에 집어넣기 위해 신경쓰고 있다”며 “끊임없는 변신만이 코미디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오는 8일부터 ‘골룸’으로 변신한 조혜련이 삶의 현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웃음을 안겨주는 ‘골룸이 간다’라는 코너를 신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