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여름, 이란에서 쿠테타가 일어나서 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의 정권이 전복되고 팔레비 왕가의 모하마드 레자 샤가 다시 국왕으로 복귀했다. 그후 이란은 친서방정책을 견지해서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혁명이 발생해서 이란은 근본주의 이슬람의 본산이 됐다.
민주적 절차로 수립된 모사데그 정부를 전복한 1953년 쿠데타가 미국과 영국의 첩보기관이 주도한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쿠데타는 CIA가 외국 정부를 전복한 첫 사례였다. 뉴욕 타임스의 국제문제 전문기자인 스티픈 카인저가 쓴 이 책(원제 All the Shah’s Men)은 이 사건을 한 편의 첩보영화같이 흥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반미주의의 뿌리가 바로 이 쿠데타에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근본주의 이슬람운동을 초래한 데에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잘 알려진 쿠데타사건을 인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일찍이 유럽에서 공부한 모사데그가 국민적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모습, 무능한 이란의 왕정이 자국의 석유자원을 헐값에 영국에 넘긴 과정, 이란의 석유를 바탕으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결코 석유채굴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국의 사정이 잘 소개돼 있다.
모사데그는 집권하자마자 민족주의를 내걸고 앵글로·이란 석유회사를 국유화했고, 영국은 이를 자국의 생존문제로 보고 강경하게 대처했다. 그럼에도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를 이끌던 애틀리 총리는 이란에 대한 직접 개입만은 피했다. 하지만 1952년 총선에서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 다시 정권을 잡자 상황은 급변했다.
195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승리함에 따라 미국의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트루만 대통령은 모사데그의 사회주의 성향을 경계했지만 영국도 식민주의 정책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영국과 이란의 관계를 조정하려 했었다.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과 앨런 덜레스 CIA 국장이 강경한 대외정책을 이끌었는데, 이들 형제는 모든 사회주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영국 정부는 모사데그 정권을 방치하면 이란이 공산화될 것이라고 덜레스 형제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CIA는 암호명 ‘에이젝스 작전’을 수립하고 비밀요원 커밋 루즈벨트를 이란에 파견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손자이기도 한 커밋은 능란한 수단을 동원해서 모사데그에 대한 반대시위를 조작하고 군 지휘관들을 움직여서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처음에 쿠데타가 실패한 줄 알고 로마로 도망쳤던 샤가 “이란 국민은 나를 원한다”면서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코미디에 가깝다. 모사데그는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1967년에 사망할 때까지 연금생활을 했다. 절대권력을 장악한 샤는 철권통치로 버텼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졌다.
저자는 1979년에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이 점거된 것은 그 곳이 26년 전에 쿠데타를 지휘했던 본부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같은 설명에 대해 적잖은 반론이 제기됐다. 당시 한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등 공산세력이 팽창하고 있어 이란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지적이 그 중 하나다. 모사데그 정권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요즘 같은 근본주의 이슬람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도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상돈·중앙대 법대 교수 sdlee5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