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2001) KBS2 밤11시 20분

‘올드 보이’의 유지태와 ‘대장금’ 이영애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열정과 상처·회한·성장의 멜로드라마. 두 스타는 자연의 음향에 빠져 살아가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와 그 소리의 녹음 여행에 동반하는 연상의 이혼녀 은수 역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KBS '봄날은 간다'

감독 허진호는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못지않은 여운 여백으로 영화를 담백하게 채색, 채음했다. 그런데도 유난히 길고도 그윽한 울림을 전해주는 섬세한 순간들이 넘실댄다. 마치 눈에 보이게 하려는 듯 정성스레 담아낸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비롯해 키가 맞지 않아 더 인상적인 길거리에서의 그 달콤한 입맞춤, 어느 화창한 봄날 곱게 단장하고 죽음의 여정을 떠나는 상우 할머니의 뒷모습,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등의 명장면 명대사 등이. 단 모름지기 사랑 영화엔 질퍽한 정사신 정도는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여기거나 느린 호흡 영화는 질색이라는 분들이라면 보지 않는 게 현명할 성싶다. 106분. ★★★★(5개 만점).


◆'월요일 아침'(2002) EBS 밤10시
단조로움은 삶의 비극

국내 극장에선 죽었다 깨도 결코 볼 수 없을, 그루지야 공화군 출신의 노장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최근작이다. 2002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 등을 안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 뱅상(자크 비두)을 중심으로 삶의 단조로움을 극히 단조로운 톤으로 스케치한 코믹 부조리극이다. 이야기 호흡의 느리기로 치면 ‘봄날은 간다’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과 느림이야말로, 그 속을 뚫고 마치 송곳처럼 불쑥 터져나오는 일련의 부조리적 괴팍함이야말로 영화의 빛나는 덕목이다. 그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법이 없는 주인공의 처신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을 법도 하다. ‘현자’ 틱낫한 스님이 설파한 화의 다스림이 그런 경지를 말하는 게 아닐는지. 단적으로 ‘아트 필름’의 진수를 만끽시켜 줄, 매니아를 위한 반가운 선물이다. 130분. 원제 Lundi Matin.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