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 ’.재투성이 구박덩어리가 왕비로 탈바꿈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불안한 삶을 넘어서려는 소망이 담긴 신화다.

◆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김옥희 옮김/동아시아/1만원)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 부(富),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원망(願望)과 본능적 욕구가 담긴 신화(神話) 읽기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원형질을 읽으려는 노력은 수없이 시도되어 왔다. 철학자이며 종교학자인
저자도 세계의 신화에서 이같은 인간 본질의 원형을 찾으려 노력한다.

"신화가 가진 비 현실적 서술과 비틀림, 반전, 비약이야말로 신화가
가진 힘"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신화성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한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사회 구조나 언어가 전혀 다른
이질적 사회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신화나 전승이 내려오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는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어디서나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다. 더구나 현대에 와서는 영화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더욱 널리 퍼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주의 시각에서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왜 신데렐라인가. 저자는 신데렐라 이야기야말로 "죽음과 삶, 그리고
인간에 관해 '완벽하게 고대적인 성격'이 보존"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에 와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천은 17세기 말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에서 간행된 샤를 페로의 동화다. 그러나 신데렐라
신화로 가장 오래된 것은 샤를 페로보다 800년 앞선, 9세기 중국 책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실린 '섭한(葉限) 이야기'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19세기 초에 채록된 그림형제의 '재를 뒤집어 쓴 소녀'가
죽음과 선악의 인과응보란 점에서 페로의 동화보다 훨씬 신화적 원형에
가깝다고 저자는 평한다. 터키, 그리스, 러시아 일대에 전승되는
'털가죽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유럽에만 450여 종의 이러저러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신화는 단순히 전승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가치와
신념체계를 반영하며 창조되기도 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미크마크족)에게 전해진 페로의 동화가 전혀 다른 메시지로
변하는 것이 좋은 예다. 신데렐라의 아름다운 외양과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왕자, 그리고 수동적으로 왕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신데렐라는
철저히 부정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가 읽어낸 신데렐라 신화의 핵심은 삶과 죽음을 중개하는 힘다.
아름답게 각색된 페로의 신데델라건, 좀더 잔혹한 분위기의 그림동화건,
여성성이 강조된 미크마크족의 대안(代案) 신데렐라건, 어둠 속에
숨겨져있던 여주인공을 밝은 세상으로 내놓는 힘은 '우주의 조화'를
이루려는 중개 기능. 그것이 요정이건, 죽은 어머니건, 또는 죽은
물고기(왕자)건, 불안으로 가득찬 삶을 채워주는 것은 삶 너머의 세계다.

'비교종교론' 강의를 묶어낸 이 책은 강의 분위기 물씬한 존대말체로
쓰인데다, 앞 부분에 일본 신화를 인용하고 있어서 처음 빠져 들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시공을 넘나드는 풍부한 사례와 인용, 그리고
차분한 설명은 마치 잘 지은 밥을 먹는 것처럼 무미(無味) 속의 구수한
맛을 낸다. 그러나 '이와나가히메'(岩長姬) 처럼, 한자를 써주면 쉽게
이해될 내용을 굳이 "일본 말로 이와는 바위, 나가는 길다는 뜻"이라고
역주를 단 것은 한자를 잘 모르는 독자를 의식했다고 보기에도 좀 의아한
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