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지질학과 김항묵(金恒默·58) 교수는 요즘 지질학 용어 25만개를
우리 말로 바꾸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중생대 초기인
트리아스기(紀)는 '삼첩기'(三疊紀), 고생대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단위를 뜻하는 '현생 이언(Eon)'은 '현생 주(宙)'로 바꾸는
식이다. 그리스어나 영어를 많이 쓰는 지질학 용어를 우리 말로 다듬는
일이다. 97년부터 중국인 학자와 국내 학자 5명과 함께 김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자연사·미래환경학회에서 추진하고 있다.
우리 말을 쓰려는 노력은 이뿐 아니다. 최근 창간된 '우리 말로
학문하기 모임' 학회지 '사이'는 공룡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 교수가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공룡 이름 200여개를 우리 말로 바꿔 학회지에
발표한 내용을 소개했다. 티라노사우루스→폭군룡, 벨로시랩터→도적룡,
스테코사우루스→ 판(板)룡 식이다. 그리스어 학명이나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 공룡 이름은 길어서 외우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이름만
들어서는 공룡의 모양이나 특징을 전혀 감잡을 수가 없다.
예컨대 아나토사우루스란 공룡은 '오리용', 스티라코사우루스는
'뿔투성이용'으로 금새 모양새를 짐작할 수있다. 이름을 멋대로 지은
게 아니라, 원어의 뜻에 맞게 우리 말로 바꾼 것이다. 오비랍토르는
'알도적룡', 오르니톨레스테스는 '새사냥룡'으로 이름지은 것처럼
공룡의 생태에 어울리는 이름을 딴 것도 있다. "영어나 다른 나라 말로
용어를 쓰면서, 우리 학문의 발전을 얘기할 수있나요. 우선 이름부터
제대로 불러야죠."
'자연과학계의 우리 말 전도사' 역을 자임한 김 교수는 "공룡 학명
500개가운데, 90% 정도는 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은 티라노사우루스는 '覇王龍'(패왕룡), 트리케라톱스는
'三角龍'(삼각룡) 식으로 완전히 바꿔쓰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80년대초부터 영남 지역 40여개곳에서 발견된 4000여개의 공룡
발자국 흔적 가운데 2종의 공룡에 대해 우리 말로 학명까지 정해,
학회지에 발표했다. 경남 고성에서 발견된 이구아나류 공룡에는 고성룡,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중간크기 초식공룡에는 함안룡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김 교수도 걱정거리가 있다. 공들여 만든 우리 말이 잘 통용되지
않기 때문. 영화 '쥬라기 공원' 등이 인기리에 상영되면서 공룡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이름은 여전히 낯선 라틴어 학명이나 영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말로 쉽게 뜻이 통하는데, 굳이 난해한
서양 용어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힘들게 작업해도 소용이
없으니…." 김 교수는 "그래도 이 작업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