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에로틱 조각물.

■에로스 문화 탐사(전 2권)

이병주 옮김 /
생각의 나무 /
각권 1만7000원

에로스의 정념들이 도처에서 명멸한다. 그것들이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고 인간 삶을 움직인다. 에로스란 무엇인가. 여러 이설이
있으나, 플라톤은 '향연'에서 충족과 풍만·부유의 신인 아버지
포로스와 결핍과 부족·빈곤의 신인 어머니 페니아 사이에서, 에로스가
태어난 것으로 본다. 어머니의 핏줄 때문에 항상 부족과 결핍을 느끼는
동시에 아버지의 핏줄을 따라 늘 풍요와 충족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에로스는 운명적이다. 이런 에로스라는 이름의 욕망은 실제로는 충족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거듭 미끄러진다. 그것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갖은
미끄러짐으로 에로스와 에로티시즘은 천 개의 빛깔을 얻는다. 때때로
그것은, 조르주 바타이유의 지적처럼, 죽음까지 파고든다. 옛 신화는
물론 현실에서도,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그리 멀지 않다.

에로스의 운동 혹은 성행동의 존재 방식을 통해 시대를 움직이는 삶의
전반적인 법칙까지 발견하고자 한 풍속사가는 에두아르트 푹스였다. 각
시대가 제각기 스스로 쓴 '풍속의 역사'를 그는 요령있게 정리했다.
서양에 푹스가 있다면 한국엔 내가 있다며, 의욕을 부린 이가 있었다.
1992년에 작고한 '소설 알렉산드리아',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

'생명이 있는 곳에 에로스의 찬가가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호모
에로티쿠스'론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동서고금을 주유한다. 성성(聖性)이
깃든 에로스를 인식했던 고대, 에로스의 광휘가 부정된 중세를 거쳐
연애가 예술화한 시대임에도 디오니소스적인 성이 난무했던 17, 18세기,
에로티시즘과 성이 상품화되었던 19세기, 상대적으로 여성이 성생활에
발언권을 갖게 된 20세기. 이렇게 시대를 격해 내려오면서 에로스의
문화사를 1권에서 정리한다. 2권에서는 동양의 에로스와 종교별 에로스의
풍경, '시경'을 중심으로 한 에로티시즘의 문학적 표현과 악녀의 초상
등을 다룬다.

비록 체계적인 문화사는 아니지만, 에로스의 생명 원리와 꿈을 넓은
시각에서 파악하게 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몇몇 인상적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에로스와 쾌락의 긍정적 활용 방안은 무엇인가. 그 동안
남성이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던가. 철저하게 상품화되고
왜곡된 에로스의 현실을 어찌 할 것인가. 억압적 현실을 넘어선 자리에서
진정한 에로스적 판타지, 혹은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花紅柳綠)'의
경지를 어떻게 꿈꿀 것인가. 마침내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한편 남성 중심적 서술이 많아 여성이 지나치게
타자화된 점, 서양에 비해 동양 쪽 자료가 빈약한 점 등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아마도 푹스에 필적할만한 풍속사가의 자리를, 저자 스스로
차지하기보다는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 우찬제·문학비평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