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어느 신문 특파원이죠?"-"제가 특파원인데요" ##
지난 6월 말 워싱턴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선배를
공항에서 배웅하는데, 웬지 적진에 홀로 남겨진 듯 서러운 기분이 들어
목이 메었다.
“선배,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해주셔야지요.”
"모두들 지켜보고 있으니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열심히 일해.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이렇게 워싱턴 특파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한달 동안은 '현존하는(?)
유일한 한국의 여자 워싱턴 특파원'이라는 이유로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졌다. 어딜 가든 과도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똑같은 질문에 수없이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미국 국무부의 한국담당 관리조차도, 지난
십수년간 한국특파원들을 상대해 봤지만 '여자 특파원'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 했다.
워싱턴의 한국식당에서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함께 근무하고 있는
주용중씨와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떤 한국남자가 다가와서,
"아이구, 주용중씨 사모님 오셨습니까"라며 반갑게 인사해 난처했던
일도 있다.
워싱턴 한국특파원들의 가족동반 저녁식사에서는, 식당 종업원에게 "이
김치 참 맛있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좀 싸드릴게요. 그런데 남편은
어느 신문 특파원이시죠?"라고 물었다. "아…네… 저는 제가
특파원인데요"라고 말하자, 식당 종업원은 얼굴이 벌개져서 무안해
하더니 그 후에는 식당에 갈 때마다 "강기자가 워싱턴에 있는 동안
김치는 내가 책임진다"며 반찬거리를 따로 싸준다.
가장 흥분해 버린 것은 미국에 유학중인 한국 여자후배들이었다. "언니,
힘내요. 뭘 도와줄까. 말만 해요"라며 수시로 전화를 걸어주는 후배도
있고, "조선일보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해 거부감을 느꼈는데, 워싱턴에
여자 특파원을 보내는 '진보적인' 모습에 감동하여 조선일보를
좋아하기로 했다"며, '전향(?)' 의사를 밝힌 후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사람들의 반응일 뿐, 미국의 취재원들은
한국특파원이 여자든 남자든 개의치 않는다. 워싱턴으로 오기 전에
연수하고 있던 하버드 대학의 지도교수는 "어차피 워싱턴에 있는
기자들의 반은 여자니까, 앞으로 여자라고 해서 손해 볼 것도, 덕 볼
것도 없다"며,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해주었다.
워싱턴에 와보니, 과연 워싱턴은 여자고 남자고 한가하게 따질 겨를이
없는 곳이다. 한국과의 시차가 정 반대라 워싱턴 특파원들은 하루에
이틀을 살아야 한다. 미국의 하루를 보내고 나면, 서울의 아침이
시작되고 서울의 마감시간에 맞춰 기사를 쓴다. 워싱턴에 온 이후 새벽
세시 이전에 잠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이제는 새벽에 자는 습관이 들어,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 밤에 '오늘은 걱정 없이 잘 수 있다'고
기뻐하면서도 결국은 일찍 잠들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후에
시간이 나면 무조건 잠을 잔다.
어느날인가는 오후에 사무실에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밖이
어슴프레했다. 시계를 보니 7시. '이런! 기사도 안쓰고 아침까지 자버린
건가?' 혼비백산하여 진땀을 흘리며 TV를 틀어보니 7시 저녁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에 너댓 종류의 신문을 읽고, 쏟아져 나오는 잡지들을 훑어보고,
워싱턴 전역에서 수시로 열리는 각종 브리핑과 한국 관련 회의에
최소한만 따라다녀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더해 기획이나
특집 아이디어로 고심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치약 짜듯 누를 때마다 죽죽
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한다. 컴퓨터처럼 인간의 뇌와 체력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면, 나의 일년 연봉을 모두 갖다 바쳐도 좋으니
용량을 배로 늘리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는 거의 고문도구다. 회사에서 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늘 "자고 있었니?"로 시작된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전화를 받아도 "절대로 자지 않았다"고 박박 우기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새벽까지 깨있어야 하는 워싱턴 생활이 힘들다고 엄살을 떨자면 한이
없지만, 이 고단함을 상쇄시킬만한 매력이 이 안에 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메카라는 워싱턴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한국을 보는 재미와 의미는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기자에게 다시 없는 귀한 기회다. 강의실에서만
배웠던 약소국 외교의 현장을 보고,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어우러지는
절묘한 현장을 목격한다. 한반중에 바짝 긴장했다가 일을 마치고
안도하는 순간의 쾌감에도 조금씩 중독되는 것 같다. 이런 기쁨들이
없었다면, 아마 보따리를 싸도 몇 번은 쌌을 것이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곧장 잠들지 못해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어두운
버지니아의 숲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 격려한다. 그리고 몇년 후,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후임자에게 사무실 열쇠와 핸드폰을 물려주고 '열심히 일하라'고
등 두드려주며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강인선 insun@chosun.com)
■강인선 기자는…지난 6월 말부터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워싱턴에 가기 전에는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연수하면서
월간조선에 '하버드 통신'을 연재했다. 1990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월간조선 기자로 일했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