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소작농 아버지는 아들의 등을 떠민다. 다시는 돌아가지 말아야 할 그곳은
전망없는 중노동이 삶을 갉아먹는 땅이다. 그렇다면, 그 아들이 푸른 꿈
안고 찾아감 바다는 과연 이상향이든가.
미국 해군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맨 오브
오너'(Men of honorㆍ10일 개봉)은 지금도 세상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는
'꿈을 이루기'에 대한 영화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불굴의 노력으로
꿈을 성취한다는 휴먼 드라마, 그것도 군대를 무대로 한 이같은 이야기는
이미 '사관과 신사' '탑 건'에서 할리우드가 실컷 울궈 먹은 소재다.
남다른 점이라면,이번엔 주인공이 인종 차별 장벽까지 뛰어넘어야하는
흑인이란 것. 하지만 이 또한 극적 긴장감을 더욱 확대하는 장치로 200%
활용될 뿐, 잘 짜인 (그리고 극도로 낯익은) 구도 속에서 예상대로
흘러가는 스토리는 헐리우드식 '성공 시대'에 머문다.
칼 브레셔(쿠바 구딩 주니어)는 흑인으로선 유례가 없던 해군 잠수병을
꿈꾼다. 그러나 1950년대 미 해군은 백인 소년의 천국. 최고의 잠수부를
자처하는 선데이 일등 상사(로버트 드 니로)는 사고로 인해 더 이상 심해
잠수부로 활동 할 수 없게 되자 난동을 피우다 강등당해 잠수학교
교관으로 전보된다. 선데이 밑으로 온 잠수병 지원생 브레셔. 밑빠진
독에 물 채우기보다 더 황당한, 넌센스에 가까운 학대 속에서도 브레셔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잠수부 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잠수병이 되는 데
성공한다. '실화임을 강조하는 성공담은 인종차별과 계급문제 극복을
개인적 차원의 과제로 환원하는 정치적 위험성까지 담고 있다.
영화는 브레셔와 선데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흑백 긴장과 힘의
균형을 조절하려하지만, 광끼 마저 엿보이는 로버트 드 니로의 열정적
연기가 상투적으로 압도할 뿐, 쿠바 구딩 주니어는 '착한 톰'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아직도 흑인 주인공을 둔 영화는 흥행
위험이 그만큼 높은 것일까. 조지 틸먼 주니어 감독은 로버트 드 니로
스펙터클을 단단한 안전 장치로 고정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