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택시 문은 운전자가 기계조작으로 여닫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택시 문에는 '차문의 개폐는 운전사에게 맡겨 주세요'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런데 '맡겨 주세요'를 뜻하는 일본어
'마카세데쿠다사이'를 보고 실소한 적이 있다. '맡기다'를 뜻하는
일본어 '마카세루'가 우리말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일본어 읽다가 자주
하는 경험인데, 우리말에서 일본식 잔재가 잘 닦이지 않는 것은 두 나라
말의 결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고종석은 잡지 '인물과 사상'에 쓴 글에서, "외래어가 됐든
번역투가 됐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전체주의 헌병 노릇은 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어의 잔재에 대해서는 지적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우리말과 결이 비슷한 일본어가 우리말로 오인된 채 쓰일 때마다 나는
지적하는데, 지적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그래요, 몰랐어요"다.
모르고 쓰는 것 같아 지적하기로 한다.
한 일간지 특집 제목에 '소라색 치마'라는 말이 쓰였다. 기자에게,
'소라(공)'는 '하늘'을 뜻하는 일본어이니 '하늘색'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해주었더니, 바로 승복하는 것을 보았다. 젊은 사람들이
TV에 나와 '무데뽀'라는 말을 쓴다. 소설의 지문에서도 읽었다. 모르고
쓰는 것 같다. '무데뽀(무철포)'에서 '데뽀(철포)'는 '화약을
장전하여 탄환을 발사하는 병기의 총칭'이다. '데뽀'의 일종인 조총이
쓰이던 시대에 '데뽀'도 없이 날뛰는 무사들을 조롱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막무가내'가 좋겠다. '나래비 서다'는 말도 자주
쓰인다. 사람들이 '나래비'로 서 있네? 방송에 나온 한 리포터의
말본새다. '나라비'는 '늘어선 줄'을 뜻하는 일본어, '줄서다'를
뜻하는 '나라부'의 명사형이다. 모르고 쓰는 것과 알면서도 쓰는 것은
다르다. 알면서 쓰는 사람은, 그 말에 묻어 있는 껍진껍진한 땟자국까지
끌어안고 쓴다. 나는 전체주의적 충동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알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소설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