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얼이 깃들이는 굴'로 풀이한 사람이 있다. 굴이라는 말이
얼핏 납득이 안 가지만, 굴은 곧 구멍이고, 구규 즉 사람의 몸에 나
있는 아홉 구멍 가운데 일곱 개(눈구멍 둘, 콧구멍 둘, 귓구멍 둘
그리고 입구멍. 그러면 아홉 개에서 나머지 둘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가 얼굴에 몰려 있으니 굳이 얼굴을 굴이라고 우긴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신관, 낯, 낯짝, 광대, 쪽 그리고 세숫대야. 모두가 얼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낯이나 신관은 점잖은 축에 들어가고 광대나 낯짝은 점잖지
못한 말, '쪽팔린다'고 할 때의 쪽이나 세숫대야는 썩 점잖지 못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신관이 훤하다'고 말하는 그 신관은 얼굴의
높임말이고 낮은말은 광대로, 광대등걸은 몹시 파리해져서 뼈만 남은
얼굴을 뜻하고 광대뼈도 광대에서 나온 말이다. 등걸은 줄기를 잘라
낸 나무의 밑동이다. 광대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던 말로 옛날에
연극이나 줄타기, 판소리를 하던 사람을 광대라고 불렀고, 광대들이
쓰던 탈이나 무대 의상도 광대라고 했으며, 광대들이 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는 일, 즉 오늘날의 분장도 광대여서
'광대를 그린다'고 했던 것이다.
분장이나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을 민낯이라고 하는데
'민-'은 아무 꾸밈새나 덧붙어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두어로
소금기가 없는 물을 가리키는 민물이나 소매가 없는 옷을 뜻하는
민소매도 접두어 '민-'이 붙은 말들이다. 민소매라는 낱말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일본말로 '소데나시' 아니면 아예 없다는 뜻의
'나시'로 부르는 일이 많은데, 앞으로는 민소매나 민소매옷이라는
우리말을 살려 썼으면 좋겠다. 민머리는 정수리까지 벗어진 대머리를
뜻한다.
머리털 말고 얼굴에 난 털, 그러니까 수염을 나룻이라고 하는데,
구레나룻은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나룻이고, 가잠나룻은 짧고
숱이 적은 구레나룻, 텁석나룻은 짧고 더부룩하게 많이 난 나룻인데,
텁석나룻을 기른 사람을 텁석부리라고 하는 것이다. 털이 많아서
험상궂게 보이는 나룻은 털수세라고 하고, 다보록하게 함부로 난
나룻은 다박나룻이라고 하는데, 어린아이의 다보록하고도 짧은
머리털을 다박머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승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