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경(48)씨가 신작 장편소설 '내 안의 깊은 계단'(창작과비평사, 310쪽,
7500원)을 냈다. 작가의 네번째 장편인 '…계단'은 삶과 죽음의 순환, 강처럼
유장한 인생 그리고 그것과 얽어지는 사랑 얘기다. 또 작가는 물신적-상업적
남녀관계와 순수한 사랑을 어떻게 구별해야만 하는 것인지 또 그것들은
어떻게 부대낄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어울리는 한국 사회의 나이는 삼십대다. 이들의 방황은 20대의
그것에 비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강석경 씨는 지난 8일 해질무렵 신문사를
찾아왔다. 검은 색 정장이 화사했다. 내명년이면 50줄인데 아직도 애들같은
웃음이 향맑다.

20대 초반 '근', '오픈게임' 등으로 문학사상지의 신인상을 받으며 70년대
한국문단에 진지한 빛줄기를 던졌던 그녀다. 강석경은 늘, 진정한 삶을
방해하는 인생의 조건들을 고뇌했으며, 구원을 모색하는 인물상을 그려왔다.

86년 여러 문학상을 휩쓴 중편 '숲속의 방'은 "80년대 소설의 중요한
수확이며, 현실인식의 훌륭한 증폭제"(문학평론가 이남호)라는 찬사를 받았다.
강석경의 대표작이 된 것이다. 여느 연애소설과 달리 읽어내기가 만만찮은
이번 소설에는 첩의 소생인 강희-소정 남매, 이들과 사촌인 강주, 그리고
강주의 약혼자였다가 나중에 강희와 결혼하는 이진 등 4명 중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강희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한 여자에만 구속되는 삶은
참을 수 없다. 자유롭게 여러 여자와 동거를 즐기다 종당에 강주의 약혼자였던
이진과 결혼한다. 소정은 반대다. 중국 여행 중 한 일본인을 만나 사랑의
순수를 배운다. 그녀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홀로 이민을 떠난다.

강주는 시대 평균적이며 착한 인물이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진과
결혼을 앞두고 돌연 교통사고로 죽는다. 이진은 약혼자 강주가 죽자 강희와
결혼, 강주가 남긴 아이를 키운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끝없이 불행할 조짐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소멸과 재생이 되풀이 되는 윤회하는 삶의 기나긴 길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듯 고고학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작게는 첩의
소생인 주인공을 통해 우리에게 족쇄가 됐던 일단의 제도들을 비판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음악과 고고학, 연극에 대한 저자의 뛰어난 식견, 그리고
독일과 중국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 등은 이 소설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에게 주어지는 부상품 같은 것이다.

"한 문장도 필연이기를 바라며 수없이 언어를 걸르는 작가"로서는 독자가
소설의 일부를 리모컨으로 채널돌리듯 넘어가 버리는 것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비중있는 중진의 노작이 가을 독자의 마음을 넉넉히 채워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