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줌마는 이시대의 '아웃사이더'…그뒤엔 아저씨의 권력있다" ##.

♧사진작가 오형근(36)씨는 요즘 부쩍 유명세를 탄다. 신문이며 방송,
여성잡지까지 나서서 만나달라고 성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잘 나가는
문화평론가라도 된 듯" 하다. 흔치 않은 일이다.


사진설명 :
사진작가 오형근씨는 "한국에서 '아줌마'는 일상에서는 존재하는데, 사회적으로는 부재하는
아주 특이한 인물군"이라고 했다.

하기야 보통 사람들에게 '사진작가'란 직업은 낯설다. 그런 직업이 있

다는 건 알지만, 사진 작가 이름을 하나라도 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

다. 정범태? 그는 '사진기자'다. 꽃만 찍던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호모들

의 누드를 찍었다고? 그게 대체 내가 먹고 사는 일과 무슨 상관이냐고.

그런데도 요즘 '사진작가 오형근'이란 이름은 유명한 축에 낀다. 4월
25일까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회 때문이다. 이 전시
회에는 30대 이상 중년 여성을 찍은 가로 1m, 세로 1m 크기 흑백 사진 28
점이 걸렸다. 여기까지는 별 특별하달 게 없다. 그런데 이 전시회 이름이
'아줌마'다. 영어로 'ajumma'. 그래놓고 사진들을 보니 영락없는 '아줌마'
들이다.

한국에서 '아줌마'의 의미는 사전에 나오는 '여자 어른을 정답게 이르
는 말' 이상이다. 아니 그 이하다. 프랑스 관광청의 해석:'adjumma 집에
서 살림하는 40대 이상 여성으로, 자녀를 다 키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고 높은 구매력을 가진 한국 특유 집단.' 이 해석엔 뭔가 뒤틀어진 심
사같은 게 있다. '보험아줌마'가 '생활설계사'로, '화장품 아줌마'는 '뷰
티 컨설턴트'로 바뀐 걸 보면, '아줌마'들도 '아줌마' 호칭을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 아줌마들의 얼굴 사진을, 주름과 땀구멍, 기미까지 드러나는 얼굴
을 그야말로 '대문짝 만하게' 걸어놓았으니, 오씨가 유명해지는 건 당연
한 일 같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아줌마 사진작가'로 부르는 데 알레
르기 반응을 보인다. 몇 군데 인터뷰에만 응하고 나머지는 죄다 거절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떤 '아줌마' 한분이 제 전시회 포스터에 쓰인 제 이름을 보더니
'나 이 사람 알아, 아줌마만 찍는 사람이야' 하더군요. 아줌마 찍은 사진
만 모아서 전시회를 열었지, 아줌마만 찍다니요." 그게 그거 같은데, 아
닌것도 같다. 그의 '항변'이 이어진다.

"인터뷰 하자고 해서 만났더니, 사진은 안 물어보고 아줌마 얘기만 해
요. 제가 무슨 아줌마 전문가입니까.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는 조롱거
리가 되는 느낌이더군요. 제가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아줌마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닌데….".

사실 그는 '아줌마 전문가'가 아니라, '인물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가'
다.

83년 영화 공부하러 미국 브룩스 인스티튜트로 간 뒤,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전공하게 됐다. 처음엔 풍경 사진을 주로 찍었고, 오하이오 주립
대에서 예술사진을 다시 공부했다.

그간 가진 개인전 'Uncertain Presence(91년)'과 '오형근.사진.영화
(93년)'와 그룹전에 내놓은 '이태원 이야기' '배우 이야기' '광주 이야기'
사진들도 모두 인물 사진이었다. '이태원 이야기'는 여섯살 때부터 그가
살아온이태원 사람들을 담았고, 배우 이야기는 신 카나리아, 트위스트 김
같은 옛 연예인들에 초점을 맞췄다. '광주 이야기'는 5·18 광주항쟁을
담은 영화 '꽃잎' 촬영 현장에 무료 엑스트라로 참여한 광주 시민들을 찍
은 사진들이다. 영화 포스터 사진도 그의 작업. '쉬리' '접속' '조용한
가족' '여고괴담'같은 '대박 영화' 포스터 사진을 모두 그가 찍었다."'쉬
리'는 제작자 원하는 대로 찍어내 마음엔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줌마'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여전히 궁금했다. "현상 그 자
체보다는 현상에 연결된 '통로'를 발견하는 작업입니다." 법어처럼 들리
는 이 말은 야나기 미와라는 일본 사진작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됐다.

"그 사람은 유니폼 입은 여자만 찍습니다. 유니폼의 색깔과 치마 길이,
구두 높이는 각각 다른 권력의 표현이지요. 고용주의 권력일수도 있고,그
사회 전체의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아줌마' 사진도 어떤 권력을
표현하는 작업이란 뜻인가.

한국에서 '아줌마'는 하나의 '인물군'이지요. '아줌마'들의 화장과 옷
차림새, 장신구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아저씨'의 권력이 투영된 결과
물입니다." 그는 "내 사진을 잘 보면 '아줌마' 뒤에 있는 '아저씨'까지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3단 진주목걸이에 자수정 반지, 금테 안경을 끼
고 학교에 왔던 어머니의 모습까지 떠올렸다. "어머니는 꼭 아버지가 'OK'
하실 때까지 '나 어때요?'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셨지요. 어머니 옷차림뒤
엔 아버지가 계셨던 거지요." 이쯤 들으니까 화려하다 못해 촌스러운 왕
진주 목걸이를 걸고 웃는, 사진 속 아줌마가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아줌마 사진은 조금 특이하다. 우선 모두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
이다
얼굴 정면에 플래시를 터뜨렸고, 배경을 멀리 둬 어둡게 처리했다. 가
슴아래 부분은 일부러 조명이 닿지 않게 해 인물이 부각돼 있다. 첫 인상
은 "이거 자동 카메라로 찍은 거 아냐?" 하는 것이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머리끝과 발목은 자르면 안된다"는 게 통념인데, 그의 모델들은 죄
다 머리 끝이 앵글에서 잘려있다. 그런 사진을 정사각형에 담아놓으니 훨
씬 답답해 보인다.

"두드러지게 표현하되 불편하고 갇혀있는, 고립된 느낌을 주기 위한 의
도지요." 사진이 그런 모양인 데다, 사진마다 붙은 제목도 '호랑이무늬
옷을 입은 아줌마' '빨간 립스틱을 바른 아줌마' '악어빽을 든 아줌마'
식이다. 그러니, '아줌마 전시회'에 온 '아줌마'들은 거북살스러워 한
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된 '아줌마들' 앞에 선 자신이 '아줌마'임을
발견한 탓일까.

물론 아줌마들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리에서
말을 걸어 '캐스팅'을 시도했다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단다. 오씨처럼 콧
수염 기른 30대 중반 남자가 길거리에서 "아줌마, 사진 한장 찍어도 돼
요?" 하고 묻는 장면을 잠시 상상해 보니 갑자기 킬킬거리고 싶어졌다.

"어찌어찌해서 설득하면 촬영까지는 가능해요. 그 다음엔 전시나 출판
을 위한 '초상권 사용 허락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도 촬영까지는 가능하다니, 그것만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TV 엑스트라로 활동중인 아줌마를 영화 촬영장에서 만났다.그
아줌마의 소개를 받으면서 일은 어렵지 않게 풀려나갔다. 사진들 대부분
은 97년 3월에, 몇몇은 작년 7월에 촬영했다. 50여명을 찍어 그중 28점을
전시했다. 그중 언론에 인쇄할 수 있게 허락한 사람은 단 3명, 모두 TV
엑스트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사회의 '아웃사이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사진으로 옮기는 중이
다. '아줌마'도 우리 사회 주류는 아니고, 신 카나리아나 트위스트 김도
어느새 '아웃사이더'가 됐다. 다음 주제는 아직 못 정했다. 사람들은 "아
줌마 찍었으니까, 이제 아저씨 찍고 아가씨 찍으면 끝"이라고 농담하곤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부산영화제서 만난 외국 감독·배우들을 찍은 사
진들을 뒤적였다. 사람마다 촬영장소도, 찍는 방법도 달랐다. 바닷가에서
자연광 아래 전신을 찍은 홍콩배우 양조위는 초점이 흔들려 있었는데,"그
게 어울릴 것 같았다"는 설명. '하나비' 감독으로 이름난 기타노 다케시
는 네모난 방음벽 앞에서 범죄자 처럼 찍었다. "이 사람 성격이 꼭 모눈
종이 같은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두 시간쯤을 이야기하고 나니, '내가 이 사람을 사진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골몰하고 있는 사이,
함께 간 사진기자가 "이렇게 해보시죠,아니,저렇게…" 하며 부산했다. 아
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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