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보다 강한 사랑과 유머로 그려낸 '생지옥' 나치 수용소 ##.

♧ '노인 아이 구별할 것 없이 모두 잡아, 건장한 자들은 노예로 삼
고 노동력 없는 아이와 병든 자들은 죽여버렸다.'. 고대 국가 전쟁사
의 한 대목이라 할지라도 충격적일 터인데 20세기 나치는 그보다 한수
더 떠, 시체로 비누와 단추까지 만들었단다.

세상에 인간보다 잔인한 생명체는 없다. 인간은 배고프지 않아도
동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다. 조직적인 인간 살륙은 발칸반도를 비
롯,여러 곳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도대체 이런 인류가 시를 짓
고 노래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일까?.

차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학살의 증거들을 목격한 미학자 아도
르노는 고통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아우슈비츠 이후 시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제 시를 짓는 것은 야만적인 일이며, 살아남은 자의 끔
찍한 범죄"라고도 했다. 그게 인간이 한 짓이라면, 인간의 가장 고매
한 영혼을 담는 시 따위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는 자책의 의미였
다.

얼마 후 노학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어느 유태인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생존자의 사연을 요약하면 그래
도 살아남은 자들은 슬픔을 딛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위대
한 점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3월 6일 개봉)'
는 바로 그 생지옥에서 희망과 웃음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자객 앞에서 했다는 마지막 말에서 영감을 얻어
"그래도 아름답다"는 절규를 제목으로 삼았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베니니에 의하면 사
랑과 유머 때문이다. 관객은 중반부까지 이 영화가 유태인 학살을 다
룬 영화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30년대말 이탈리아. 삼촌의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유태
인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여교사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베니니
의 실제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끊임없이 우연한 장소의 운명적 만
남을 시도한다. 우연과 우연이 계속 이어지며 도라와 마주치는 귀도의
정교한 시나리오에 관객도 도라도 넋이 나갈 지경이다. 채플린 영화의
주인공처럼 좌충우돌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남루한 환경도 아랑곳없이
이 부잣집 규수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에 성공한다.

로맨틱 코미디였던 영화는 중반에 느닷없이 경악할 비극으로 전환
한다. 도라와 다섯 살바기 아들과 행복하게 살던 귀도의 집에 미치광
이 살인마 나치의 검은 손길이 닿는다.

아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간 귀도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을 안
심시키기 위해 이 모든 것이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걸고 벌이는 게임
이라고 속인다. 가장 오래 숨어있는 아이가 1등이라는 말에 어린 아들
은 수용소내에서 용케 칩거 생활을 견뎌낸다. 그동안 수용소의 아이들
과 노인은 모두 가스실로 끌려갔다.

유태인이 아니지만 가족을 따라 수용소 수감을 자원한 아내 도라는
격리된 생지옥에서도 남편과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기쁨을 누린다. 철
없는 남편이 독일군 방송실이 빈 틈을 타 "나의 사랑하는 공주님","엄
마 나 잘있어요"라고 방송을 한 덕분이다. 상상해보라. 이렇게 순수하
고 아름다운 남자가 내 남편이요,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들었을 유태인 수용소 여인의 심정을.

귀도는 희망을 위해 태어난 요정처럼 조금도 절망하지 않고, 조금
도 굽히지 않고 아들을 위해 게임을, 아내를 위해 유머를, 그리고 자
신을 위해 생존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마침내 독일군은 퇴각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사살한다. 귀도는 마지막까지 아들에게 당부한
다. 주변이 조용해지면 그 때 밖으로 나오라고.

꼬마가 소방박스를 열고 나오자 모퉁이에서 나타난 미군 탱크. "야,
진짜아빠 말이 맞네!". 당시 이탈리아에 살았던 유태인 4만5000명 중
한명이었던 귀도는 희생당한 8000명 중 한 명이 됐지만, 죽음 앞에서
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유머와 희망은 아내와 아이에게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주었다.

'박애와 배신'이란 책에서 이 영화와 비슷한 실화를 소개한 알렉산
더 스틸의 분석처럼 베니니 각본의 주제는 반인종주의라기보다 사랑의
힘이다. 감히 '아우슈비츠'를 유머로 다루며, 어떤 드라마나 다큐멘터
리보다 강렬한 울음과 웃음을 베풀어준 베니니의 용기에 전세계가 무
수한 영화상으로 찬사를 보냈다.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