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베트남 국적 여성과 사이에서 딸을 출산했으나 미혼부라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던 남성이 법원의 결정으로 ‘법적 아빠’가 됐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혼인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출생신고는 어머니가 하게 되어 있다. 아버지가 아내 없이 출생신고를 하려면 특수한 경우라는 점을 법원에 확인받아야 한다.
4일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대구가정법원 김형태 판사는 최근 ‘친생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 재판에서 미혼부 A씨의 신청을 인용했다.
A씨는 회사 동료인 베트남 국적 여성과 2년여 간 교제를 이어오던 중 지난해 9월 딸을 얻게 됐다. 사실혼 관계였던 이 여성은 출산 며칠 후 갑자기 집을 나간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홀로 딸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관할 주민센터를 방문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A씨가 출생신고를 할 자격이 없다”며 거부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서는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모(母)가 하게끔 되어 있다. 다만 ▲모의 소재불명 또는 정당한 사유 없이 모가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거나 ▲모의 성명,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어 특정할 수 없는 등의 경우에는 법원의 확인을 받은 후 비로소 부(父)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출생신고를 못하자 예방접종 등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았다. A씨는 딸의 출생 이후 8개월 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출생신고를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A씨는 주위 사람의 권유로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친모의 이름 등 인적사항은 알 수 있지만, 친모가 갑작스레 사라져 정당한 사유 없이 딸의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발급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법원은 A씨의 신청을 받아들였고, 그는 딸의 출생신고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소송을 대리한 공단 소속 김동철 공익법무관은 “인간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를 가지는데,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이러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입법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제가 된 모의 출생신고를 원칙으로 규정한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은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5년 5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