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내부 모습. 여성가족부의 외국어 표기는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Gender Equality)를 넣어 영어로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라고 표기하지만, 한자로는 생물학적 여성을 가리키는 女자를 넣은 女性家族部라고 표기한다. 영어 표기와 한자 표기의 뜻이 다른 셈이다. /뉴스1

최근 벌어진 ‘비(非)동의 간음죄’ 소동은 법무부 검토 의견서를 여성가족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빚어졌던 것으로 29일 드러났다. ‘종합 검토 필요’라는 법무부의 표현을, 여성부가 ‘개정 검토’로 멋대로 바꿔썼다는 것이다.

혼선 초래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여성부는 “오해”라며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개정 검토’를 마치 ‘개정 추진’처럼 보이도록 쓴 언론 잘못이란 주장이었다.

이번 소동은 지난 26일 오전 여성부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 발표 자료에서 ‘성폭력 관련 법률 개정(법무부, 여성가족부)’라는 소제목 아래 이렇게 적으면서 시작됐다.

<형법 제297조의 강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 검토>

이 소식은 즉각 언론에서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언론사들이 뽑은 제목은 ‘폭행협박 없이 강간죄 성립 검토’(연합뉴스), ‘동의 없는 성관계, 강간죄 성립 검토’(서울신문), ‘폭행·협박 없어도 강간죄 처벌 검토’(조선일보), ‘여성부 “폭행·협박 없어도 동의 여부로 강간죄 성립 검토”’(중앙일보) 등이었다.

26일 오전부터 커뮤니티에서 돌던 풍자 성관계 신청서 /커뮤니티 갈무리

논란이 일었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검토’란 ‘추진의 첫 단계’를 뜻해왔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성관계 신청서’ 샘플이 등장했고, ‘성관계 동의를 공인해주는 국가적 전문직이 필요하다’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특히 최근의 젠더 갈등과 맞물려 이대남(20대 남성)의 분노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그날 오후 법무부가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여성부도 최초 발표로부터 9시간만에 “(비동의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여기까지가 소동의 드러난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주무부처는 여성부였지만, 실제로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양성평등위원회 지휘 아래 법무부를 포함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일까.

여성부는 작년 10월 이번 비동의간음죄에 대한 법무부 의견을 물은 바 있었다. 그에 대한 법무부 답변은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하여 성폭력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 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반대에 가까운 신중검토 의견’이었다. 법무부는 이러한 의견을 작년 11월 국회 법사위에도 똑같이 제시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발표가 나왔을까. 결국 마지막에 키를 쥔 쪽은 여성부였다. 여성부 입장을 공식 대변하는 대변인실은, 이번 발표의 경위에 대한 조선닷컴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법무부의 ‘종합 검토 필요’가 사실상 ‘개정 검토’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법무부 뜻을 똑같이 옮겨 적었을 뿐인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복수의 대변인실 관계자가 똑같이 “’검토’라고 한 것을 기자들이 마치 ‘긍정 검토’한다는 식으로 쓴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요 언론은 여성부 발표문 그대로를 제목에 담았을 뿐이었다.

조선닷컴은 실무부서에 ‘검토 필요’를 왜 ‘검토’로 고쳤는지를 물어보기 위해 26~27일 이틀에 걸쳐 여성부 여성정책과와 그 상위 여성정책국에 수십차례 전화를 걸고 메모를 남겼지만 그들은 답이 없었다. 발표문으로 사회적 논란을 빚은 정부 부처의 태도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