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과 이두아 부단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민원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 전 경기도청 5급 공무원 배모씨에 대해 사적 심부름 등 '공무원 갑질 논란'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려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 전직 경기도 7급 공무원 A씨는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가 샌드위치·과일 등을 경기도청 행사 명목으로 구매해 집으로 빼돌리곤 했다고 폭로했다. 일식당, 중식당 등에서 반복적으로 법인 카드를 썼다고도 했다. A씨는 이 후보 집으로 가져갈 쇠고기 값 지불을 위해 개인 카드와 법인 카드를 ‘바꿔치기’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2. 김원웅 광복회장이 2년 8개월 동안 광복회장으로 재임하면서 9000만원을 법인카드로 썼는데, 이중 상당 부분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걸로 의심된다고 TV조선이 8일 보도했다. TV조선에 따르면 김 회장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있는 강원도 인제군에서 주말에 법인카드를 상당수 썼다고 한다. 방송은 전직 광복회 간부 인터뷰를 통해 김 회장이 법인카드로 가족들 반찬값까지 결제했다고 보도했다.

법인카드(법카)가 이른바 ‘핫한 키워드’가 됐다. 법카에 익숙한 영업, 대관 담당 직장인들에게 ‘법인카드의 세계’를 들었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부장은 “A씨가 폭로한 방식은 하수들이나 하는 수법”이라며 “감사가 철저한 기업에서는 좀 더 정교한 방식으로 법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부음 기사는 법카의 동반자”

회계 감사가 철저한 기업은 법카 사용 내역을 꼼꼼히 살핀다. 막 쓸 수 없다는 얘기다. 대기업인 B기업은 1회 30만원 이상 법카결제의 경우, 임원 승인을 받아야한다. 대다수 대기업이 법카 상한액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한 한 차장은 “한 번에 30만원 이상 결제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며 “그때마다 임원 승인 받는 건 모두에게 번거로워 다른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영업직 C 부장은 “부음 기사는 법카의 동반자”라며 “영업, 대관하는 직원들이 언론사 부음 기사의 최애독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을 알리는 부음 기사가 법카와 무슨 상관일까.

방법은 이렇다. 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면, 일단 법카로 30만원을 결제한다. 나머지 20만원은 개인 카드로 결제하고, 부음 기사 2건을 첨부한다. 부조금을 냈다고 하는 거다. 이후 재무팀에서 경조사비를 현금으로 돌려받아 개인카드 사용금액을 보전받는 것이다.

대기업 대관 담당 D 차장은 “고객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일이 부음 내용까지 확인하기 어려운데다 부음 기사를 증빙 자료로 첨부하기 때문에 감사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며 “아무리 재무팀이 빡빡하더라도 이 정도는 관행으로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해외 신문에 실린 부음 기사 지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연관 없음. /연합뉴스

◇200만원 결제하고 170만원 돌려받기

회계 감사가 깐깐한 기업일수록 법카 사용은 물론 ‘현금 마련’도 까다롭다. 접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선 ‘꼼수’를 생각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럴 때 ‘깡’이 동원된다.

‘법카 깡’에는 단골 음식점과 구둣방이 등장한다. 한 제약회사 영업직 과장 E씨는 “회사 차원에서 법카로 골프 접대를 못하게 돼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법카 깡을 해서 현금을 마련해 골프 접대를 한다”고 말했다. E씨는 단골 한우구이집을 이용한다.

한우식당에서 법카로 200만원을 결제하면 주인이 수수료(부가세, 카드수수료, 소득세 증가분 등)를 제하고 현금 170만원을 준다. 이 돈을 들고 골프 접대를 나가 그린피와 카트피, 캐디피를 지불하고, 골프장 프로샵에서 골프공까지 사는 식이다. E씨는 “골프 접대란 하는 쪽도, 받는 쪽도 다 부담스러운데, 현금으로 계산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법카로 선물용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한 뒤 백화점 인근 구둣방에서 현금으로 바꾸는 방식도 자주 사용됐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에서 상품권 구입을 원천봉쇄하면서 최근에는 주춤해졌다.

일부 대기업은 법카 사용액의 상한을 두는 걸 넘어 사용처까지 제한하고 있다. 유흥주점, 스크린골프장 등에서 사용을 못하게 한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면 들어줘야 하는 게 ‘을’의 입장. 그들을 위해 업소들이 ‘우회기동’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유흥주점과 스크린골프장에서 접대를 한 뒤 법카를 내면, 식당에서 식사한 것으로 전표를 떼준다. 대기업 대관 담당 D 차장은 “이런 곳들은 ‘선수’들끼리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한다”며 “결제할 때마다 알아서 ‘식당으로 해 드릴까요’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복잡한 법인카드의 세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법카로 동네빵집 200만원, 주말에 ‘가족 한우 외식’ ?

대부분의 법카 소지자들은 무서워서,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사적으로 회삿돈인 법카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사적 유용 사례도 적지 않다. 회사 자체 감사에서 이런 비위가 드러난다. 한 로펌은 소속 변호사가 고객 접대용으로 사용하는 법카 사용내역을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조사 대상인 변호사의 동네 빵집에서 1년에 200여만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보험업계 한 임원은 자신의 법카를 아내에게 줬다. 회사 이익을 위해 쓰라고 준 법카는 임원 가족의 위장을 채우는 데 쓰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아내에게 생활비로 쓰라고 법카를 준 것”이라며 “정작 본인은 부하 직원들에게 ‘법카로 밥이나 사라. 어차피 네 돈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이사는 접대 골프 명목으로 골프장 개인회원 선수금 계좌에 수회에 걸쳐 법카로 2000만원을 충전했다. 하지만 정작 고객과 함께한 라운딩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법카로 개인 골프를 즐긴 것이었다. 식음료업계 과장 F씨는 “몇년 전 영업직 과장이 법카로 수천만원어치 상품권을 산 뒤 고객들에게 주지 않고 꿀꺽한 일이 있었다”며 “이후 회사에서 법카로 상품권을 구입하는 걸 금지시켰다”고 말했다.

한우식당을 운영했던 G씨는 “법인카드로 30만~100만원어치를 평일에 결제한 후, 주말에 가족들과 오는 경우는 흔하다”며 “한번에 다 못먹으니 여러번에 나눠 ‘쿠폰’처럼 쓰더라”고 했다.

◇외국계기업은 ‘식사했나요?’ 이메일로 확인까지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후에는 기업 회계 감사가 더 깐깐해졌다. 법카 관리 체계도 ‘빈틈’이 채워지는 모양새다.

특히 일부 외국계 기업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한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임원 H씨는 “법카를 쓰는 게 복잡해서 오히려 안 쓰려고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고 말했다.

H씨 회사의 법카 사용 절차는 이렇다. 우선 법카 사용 전, 고위 임원의 사전 승인을 받는다. ‘몇월 며칠 몇시 누구를 만나는데, 어디 식당에서 만날 예정이고 대략적인 예산이 얼마로 예상된다’는 내용을 기입해야 한다. 접대를 한 뒤에는 사후 결제도 받는다.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 등이 담긴 세부 영수증을 제출하고, 접대 대상과 어떤 대화를 나눴고, 이 내용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간략한 ‘보고서’도 낸다.

H씨는 “막말로 더러워서 법카 안 쓴다는 말까지 한다”며 “그나마 우리는 간소한 편이고 경쟁사는 접대 대상자에게 이메일로 접대 내용을 확인하고 증빙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