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공고는 올 초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 400명 중 280명밖에 채우지 못했다. 작년에도 신입생이 줄어서 한 학급을 없앴는데, 올해는 두 학급을 더 줄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잘된다”는 학교로 알려져 입학 경쟁률이 2대1을 기록했는데 3년 전부터는 계속 미달이다. B공고도 올 초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 300명 중 220명을 겨우 채웠다. B공고 교장은 “얼마 전 ‘고졸 취업 박람회’에서 만난 반도체 회사에서 ‘학생들 많이 보내달라’고 하는데 ‘알겠다’고는 했지만 마음은 착잡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산업 중흥’을 외치며 교육기관마다 인력 보강을 재촉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학뿐 아니라 고교도 마찬가지다. 20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특성화고(옛 상고⋅공고) 학생 수는 2011년 33만7499명에서 작년 19만6067명으로 41.9% 줄었다. 저출산 영향으로 같은 기간 전체 고교생 수도 33.5% 줄었지만, 특성화고는 그 하락 추세가 더 심각하다.

전국 특성화고 학생 수 변화
2020년 반도체 학력별 부족인원

문제는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포진한 전기·전자 등 전통적 학과 고졸 인력들이 반도체나 전자산업 등 현장에서 필수 인력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웨이퍼를 운반하고, 기기를 보수하는 일은 고졸 출신이 주로 맡는다. 그런데 업무 강도가 세고 교대 근무가 잦아 근무 환경이 특성화고 내 다른 전공자들과 비교하면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수도권 한 전문대 교수는 “(특성화고) 학부모들도 하나(또는 둘)뿐인 자식이 공장에 가기보단 제과·제빵, 메이크업, 뷰티미용, 조리학과를 나와 우아하게 살거나, 차라리 대학에 가 새롭게 앞길을 개척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이러다 보니 반도체 산업 분야 부족 인원 1621명 중 55%(894명)가 고졸 인력으로 집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12대 주력 산업 부족 인력 2만8050명 중 고졸이 46%나 차지한다. 제조업 인력 산실(産室) 역할을 기대했던 특성화고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성화고 내부 사정은 더 우울하다. 학생들은 기피하고 정원은 못 채우다 보니 학과를 줄이거나 아예 문을 닫은 학교도 최근 10년 새 12곳이다. 특히 전기·전자, 기계, 화학공업과 등 이른바 경제 근간(根幹) 분야 전공이 기피 대상. A공고 교사는 “기계 다루다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학부모들은 물론 학생들도 공고를 꺼려 한다”고 말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보다 대학 진학에 더 몰리자 정부는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 그러자 취업률도 높아지고 지원자도 늘었다. 그런데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관심이 줄면서 인기가 시들해졌고 학령 인구 감소까지 겹쳐 위기를 맞은 것이다.

특성화고 졸업생 대학 진학은 늘고 취업자는 줄어드는 역전 현상은 매년 심해지고 있다. 특성화고 취업자 비율은 2017년 50.4%에서 작년 26.4%로 반 토막 났고, 같은 기간 대학 진학률은 32.4%에서 47.4%로 늘어났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해외 현장 유학 기회를 주고 산업 현장에 남을 수 있게 병역요원 혜택 등 각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시설 투자 확대도 필요하다. 많은 특성화고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비한 실습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종우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 벤처기업 시설·장비를 공동 활용해서 연구⋅교육에 쓸 수 있게 한 대전 나노종합기술원이나 강원도 테크노파크 등 지역 시설을 고교생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사례를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