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보고서가 내용도 좋은 거야. 인재개발원에서 이런 것도 안 가르치나? 용지 여백도 안 맞고, 자간이랑 줄 간격도 엉망이네. 다시 해 와요.”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인 20대~40대 초반 공무원들의 솔직한 사연들을 담은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라는 책에 담긴 내용이다. 행정안전부가 조직 혁신을 추진하면서 실제 밀레니엄 세대 공무원들의 글로 내용을 채운 책이다. 서점이나 전자책 등으로 무료 배포할 예정이다. 이 책에서 밀레니엄 세대 공무원들은 형식주의에 몰입된 공직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젊은 공무원 18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공직사회의 보고방식 중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에 대해 46%가 보고서 양식 꾸미기에 치중하는 것을 꼽았다. 다음이 ‘대면보고를 지나치게 선호하는 것’(21.3%)이었다.
한 공무원은 “A과장은 노안이 왔다며 보고서의 글자를 평소보다 키우고 줄 간격은 넓혀서 가져오라 하고, 국장은 종이를 아껴서 헐벗은 지구를 지켜 줘야 한다면서 전체 분량 2쪽을 넘기지 말라 했다”며 결국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난감해 보고서를 2가지 버전으로 출력해 가져갔다고 한다. 그는 “결과적으로 지구는 지켜 주지 못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공무원 일은 모든 업무의 시작과 끝이 문서로 이루어진다. 어떤 업무를 보든 문서 2개는 항상 기본으로 생겨났고, 업무 성격과 내부 사정에 따라 해당 업무가 종료될 때까지 무수히 많은 문서가 탄생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원칙상 수십 년간 각종 서류를 보관해야 하는데 부피가 커질 대로 커진 문서철을 물리적으로 보관하기 힘들뿐더러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보관 방식까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필요할 때 찾아내기 어렵다는 문제까지 있었다.
밀레니엄 세대들은 성과 평가도 더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윤모 사무관은 어느날 자기 생각에 턱없이 부족한 성과급을 보면서 울컥했다고 한다. 그에게 부서장은 “혹시 성과급 보고 속상했나? 하지만 어쩌겠어. 윤 사무관은 연차가 낮잖아. 선배들한테 양보해야지. 대신 미래가 창창하니까 이해할 수 있지? 위로의 의미로 오늘은 내가 한잔 살 테니까, 혹시 섭섭한 마음 있으면 풀어요.”라고 말했다.
직장 갑질과 과잉 의전의 문제도 지적됐다. 김모 주무관은 습관처럼 자기에게 대리운전을 시키던 과장 사연을 언급했다. 그는 “과장은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할 때마다 대리운전을 부탁했다”고 했다. 그 과장은 “내 차는 아무한테나 못 맡기겠어”라고 하는데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자, 오늘 회식은 우리 부서 막내의 건배사로 시작하지!”와 같이 젊은 사람들에게 건배사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싫다는 지적도 있었다. 90년대생 공무원들은 어떤 부서에서나 막내인 경우가 많고, 막내들은 언제나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의 타깃이 된다는 것이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조직실장은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조직의 힘과 경쟁력이 변화를 꿈꾸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힘으로부터 나온다.”라면서 “이번 책자가 공직사회 세대 간 소통과 함께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 혁신의 촉진제가 되어,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정부혁신을 더욱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