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시작한 지 9일째인 21일에도 전폭기와 미사일, 무인기(드론)를 동원한 양측의 공방전은 계속됐다. 이스라엘군은 이란 핵·군사 시설과 지휘관을 겨냥해 표적 공습을 이어갔고, 이란은 다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국제사회가 외교적 중재에 나섰지만, 양국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오늘 이란 쿰(Qom)의 한 아파트를 공습해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해외작전 부대)의 고위 지휘관 사이드 이자디를 폭살했다”고 발표했다. 이자디는 쿠드스군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작전을 총괄한 베테랑 지휘관으로 알려졌다. AFP는 “이 공격으로 그와 함께 있던 다른 혁명수비대 간부 2명도 함께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어 이란 중부 이스파한 핵시설을 또다시 정밀 타격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공격을 받은 시설은 원심분리기 제조소로, 핵물질은 없으며 방사능 유출 우려는 없다”고 밝혔다. 이란 현지 매체들은 “이 공습으로 핵과학자 이사르 타바타바이-함셰와 그 부인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이 밖에도 이란 남서부 아바즈(Abadan) 지역의 군사 기지 등 이란 곳곳의 미사일 저장소와 발사 시설을 집중 타격했다. 또 해군을 동원, 레바논 남부 나쿠라(Naqoura)의 헤즈볼라 거점에도 정밀 공습을 감행했다. 일간 하레츠는 “헤즈볼라가 이번 분쟁에 개입할 경우 본격 대응에 나서겠다는 이스라엘의 경고 직후 나온 조치”라고 전했다.
이란도 미사일 발사로 반격에 나섰다. 이날 오전 2시 30분쯤 이란의 탄도미사일 5기가 이스라엘로 향했고, 수도 텔아비브와 중부 지역에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모든 미사일은 요격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요격된 미사일 잔해가 떨어져 한 건물 옥상에 화재가 발생했다.
양측의 무력 충돌로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란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지금까지 400명 이상이 숨졌고, 이 중에는 여성과 어린이 54명, 의료진 5명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인권단체 HRANA는 “민간인 285명을 포함해 최소 722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2500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 450발과 드론 1000여 기로 인해 지금까지 24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AP 통신은 집계했다.
외교적 해법을 위한 국제 사회의 중재 시도는 계속 난항이다. 독일·프랑스·영국 3국 외무장관은 전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으나 별다른 진전이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아락치 장관은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추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협상도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AFP는 전했다.
이란은 같은 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아락치 장관은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에 미국이 개입할 경우, 이는 중동 전체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도 “이스라엘이 지역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며 이슬람 국가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네타냐후 정부가 역내 평화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2주 안에 핵 포기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경고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공습 중단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예멘 후티 반군은 이에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 설 경우, 홍해에서 미군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위협, 확전 가능성도 높아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