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뉴욕에서 체포된 작가 드리프트가 지난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찍은 사진. /로버트 만 갤러리

15일 저녁 뉴욕 하이라인 인근 로버트 만 갤러리에 뉴욕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이날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전시회를 열던 작가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웠고,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멋진 정장을 입고 있던 그는 저항 없이 경찰차에 올라탔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실제 상황인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날 체포된 사람은 ‘드리프트’라는 작가명을 사용하는 아이작 라이트(29)다. 그는 접근이 금지된 빌딩 꼭대기 등 높은 곳에 몰래 들어가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 예술가다. 뉴욕,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등 미국 여러 주(州) 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이집트 카이로, 노르웨이 오슬로 등 전 세계를 돌며 작품 활동을 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까지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가서는 안 되는 곳까지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는 점. 예를 들어 그는 지난해 관광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해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02층까지 올라간 뒤, 보안 카메라 등을 피해 첨탑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갔다. 이어 지상으로부터 약 380m 위에 있는 빌딩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 채 사진을 찍었다. 이날 뉴욕에서 체포된 이유도 이 사진 때문이다.

작가 드리프트가 2020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에 있는 앰버서더 브리지 위에 올라 찍은 사진. /로버트 만 갤러리

라이트가 체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법원에서 보호관찰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2020년 그는 신시내티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한 뒤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고, 경찰은 애리조나에서 고속도로를 차단한 채 길을 막아 그를 체포했다. 넉 달 동안 감옥 생활을 한 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고 이후 법원에서는 그의 혐의에 대해 단순 경범죄로 판단하거나 혐의를 기각했다. 이후 라이트의 사진은 NFT(대체 불가능 토큰) 열풍에 휩싸여 불티나게 팔렸고 약 1000만달러(약 140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미 육군이었다. 2014년 입대해 특수부대 소속 군목보조원이었는데 중동에 파병된 뒤 돌아와 22세 때 루이지애나에서 하사 계급을 달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병사들을 지도했다. 그런데 여름 한 철 동안 그 부대에서 다섯 명이 자살했고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PTSD)를 겪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높은 곳에 올라 사진을 찍는 계기가 됐다.

작가 드리프트가 2021년 뉴욕 타임스 스퀘어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찍은 사진. /로버트 만 갤러리

그는 뉴욕에서 체포된 다음날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재판을 받아야 한다. NYT에 따르면 혐의가 인정되면 수십 년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이 ‘증거’로 보는 것은 차고 넘친다. 체포 당일 갤러리에 걸려 있던 모든 그의 작품이 범죄의 흔적이다. 공공 공간을 예술 작품에 활용하는 작가들은 그동안 여럿 있었지만 보통은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1974년 세계무역센터에 몰래 들어가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한 프랑스 예술가 필리프 페티는 소란죄와 불법 침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중형을 면했다.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은 지하철 벽에 그림을 그려 여러 번 체포됐지만 낮은 벌금을 내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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