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위딩스'가 개발한 스마트 거울 옴니아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컨벤션 센터(LVCC) 노스홀에 있는 캐나다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뉴라로직스 전시관에 스마트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얼굴 사진을 찍자 약 60초 뒤 애플리케이션(앱) ‘아누라’에 수축기와 이완기의 혈압, 심박수, 분당 호흡수 등이 나왔다. 사진만으로 이런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은 ‘감성 인공지능(Affective AI)’ 기술 때문이다. 감성 AI는 언어나 표정, 얼굴의 혈류, 동공 등으로 인간의 감정 상태를 측정하는 AI다. ‘아누라’는 혈류를 측정해 혈압과 심박수 등을 분석한다. 뉴라로직스 관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신체 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AI가 들어가지 않는 게 없다”고 했다.

진시황이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았다면, 지금은 생명 연장을 위해 AI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통신(IT) 전시회 CES 2025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AI 제품은 헬스케어와 관련된 것이었다. CES를 주최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도 올해의 주요 화두를 AI, 지속 가능성과 함께 헬스케어를 꼽았다. 이번에 CES혁신상을 받은 제품 458개 중 49개가 헬스케어 부문에서 나왔다. AI 부문(55개) 다음으로 많다.

그래픽=양진경

◇질병 치료보다 예방 AI

이번 CES에서 보면, AI는 질병의 치료보다 진단과 예측 분야에서 먼저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혈압과 혈당, 호르몬 등을 측정하는 기술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 헬스케어 스타트업 위팅스의 전신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전신 거울이다. 사람이 거울 앞에 서면 그가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고, 얼마나 칼로리를 많이 소비했는지, 심박수는 얼마인지, 체지방량은 어느 정도인지 건강에 관한 종합적인 데이터와 함께 이를 분석한 결과와 조언을 함께 보여준다. 거울 아래에 스마트 체중계가 있고, 이용자의 스마트워치나 스마트링(디지털 기능을 탑재한 반지)과도 연동돼 있다. 이용 경험이 쌓이면 AI가 데이터의 장기 추세까지 분석한다. 이상이 감지될 경우 내장된 AI 음성 비서가 운동을 권장하거나, 건강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달한다.

캐나다 헬스케어 기업 엘리헬스는 침에서 각종 호르몬 수치를 측정하는 ‘호르모미터’를 내놨다. 혈압을 재는 것처럼 호르몬 건강도 일상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기다. 코로나 검사기처럼 생긴 기구를 입에 잠깐 물어 침을 묻힌 뒤 앱으로 사진을 찍으면, AI가 색깔과 패턴을 분석해 데이터를 산출한다. 스트레스 정도, 수면의 질, 운동 능력, 생식 능력과 관련된 정보를 주고 권장 사항을 제공한다.

혈당 관리를 해주는 제품들도 전시장에 많이 나왔다. 애플워치, 갤럭시워치와 일반 건강 웨어러블 기기로는 혈당 측정이 어렵다. 바늘로 몸을 찌르지 않고 혈당 수치를 간편하게 알 수 있는 비침습형 기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바이오팝은 달걀보다 조금 큰 스캐너로 손바닥을 찍어서 혈당을 측정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빛을 이용해 혈액의 스펙트럼을 AI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바이오팝의 부스에는 혈당을 재기 위한 사람들의 줄을 길게 늘어서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미국 헬스기업 애봇이 내놓은 ‘링고’는 팔에 붙이는 패치를 통해 식사와 운동 전후 혈당을 재고, 혈당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 맞춤형 제안까지 해준다.

◇치매 예방, 정신 건강 위한 AI도

노인 돌봄이나 치매 예방, 인지 장애 치료에도 AI에 적극적으로 쓰이게 됐다. 한국 스타트업 이모코그는 의사 출신 창업자가 AI 기술을 활용해 치매를 진단 및 치료하는 기술을 가진 업체다. 이 회사가 내놓은 ‘기억콕콕’은 앱으로 손쉽게 뇌 건강을 검사하고 인지 저하 여부를 확인하며 치매 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는 검사다. 별도 장비나 전문 기관 방문 없이 기억력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이용하면 치매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 로봇 스타트업 톰봇이 선보인 로봇 강아지는 주인이 로봇을 매만지거나 주변에 나타나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실제 강아지처럼 고개를 흔들고, 꼬리를 흔들며 품에 안긴다.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톰봇은 수천명의 노인 사례를 분석하고 이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AI로 최적화된 행동 양식까지 설계했다.

[CES 특별취재팀]

변희원 팀장, 윤진호·오로라·이영관·박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