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일본 닌텐도가 선보인 게임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은 출시 3일 만에 세계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에 따르면 3000만장 가까이 팔린 전작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판매량을 거뜬히 넘어설 전망이다. 닌텐도는 애니메이션 ‘수퍼마리오 브러더스’의 흥행으로 겹경사를 맞았다. 미국 워너브러더스와 함께 제작한 수퍼마리오 브러더스는 12억8800만달러(약 1조7000억 원)를 벌어들여 ‘겨울왕국2′에 이어 역대 둘째로 많은 수익을 올린 애니메이션 영화가 됐다.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일본 게임이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콘솔(게임기) 게임 이용자와 플랫폼과 상관없이 게임을 할 수 있는 멀티 플랫폼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일본 게임 수요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퍼마리오나 스트리트파이터처럼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게임 IP(지식재산권) 덕분에 과거의 영광을 어렵지 않게 되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탄탄한 IP를 기반으로 부활
과거 콘솔·아케이드 게임에 강세를 보였던 일본은 닌텐도, 코나미, 세가, 반다이, 남코, 캡콤과 같은 게임 명가를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 국내 IT 산업이 부침을 겪고, 2010년대 이후 PC와 모바일 게임이 급성장하면서 일본 게임은 ‘게임의 왕좌’에서 물러났다. 세가는 파친코 업체인 세미에 인수됐고 남코도 반다이와 합병해 반다이남코가 되는 구조 조정까지 이뤄졌다.
일본 게임사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기간 집에서 주로 즐기는 콘솔 게임이 인기를 되찾으면서부터다. 콘솔 게임 시장이 여전히 흥행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일본 게임사들은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과거 인기를 끌었던 게임 타이틀을 중심으로 신작을 공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 게임사들이 발매해서 인기를 끌었거나 발매 예정인 작품들은 모두 과거 인기작의 연장선에 있다. 젤다의 전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캡콤이 지난 2일 발매한 ‘스트리트파이터6′는 출시 나흘 만에 전 세계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겼다. 스트리트파이터 첫 버전이 1987년 출시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36년간 흥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다이남코는 올 하반기 대전 격투 게임 ‘철권8′를 내놓을 예정이고 코나미는 10여년 만에 호러 게임 ‘사일런트 힐2’의 후속작을 연내 출시한다고 밝혔다.
일본 게임사들은 인기 IP를 기반으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일본 문화의 전반적인 부활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19세기 후반 우키요에(일본 미술의 한 장르)가 인상파 화가에게 영향을 준 것을 시작으로 20세기 스타워즈와 같은 대중문화까지 일본 문화의 수혜를 받았다”며 “최근 한국의 K팝과 K드라마에 밀리고 있는 일본 문화는 수퍼마리오와 같은 탄탄한 IP로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콘솔에서 PC, 모바일까지 확대
소니는 지난해 전년 대비 16.3% 증가한 11조5398억엔(약 113조5308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이 매출을 견인한 것은 소니의 게임용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PS)5다. 올 1월부터 3월까지 630만대의 PS5가 판매됐는데 이는 PS 하드웨어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닌텐도가 2017년 출시한 닌텐도 스위치도 최근 누적 판매량 1억2500만대를 넘기며 역대 콘솔 게임기 판매량 3위에 올랐다.
게임 업계에서는 일본 게임 산업이 콘솔과 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함께 이뤄졌기 때문에 콘솔과 PC, 모바일을 가리지 않고 게임을 하는 멀티 플랫폼 시대에 적응하기 쉽다고 본다. 하나의 플랫폼에서만 게임을 출시하기보다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해 다양한 연령층과 지역을 공략하며 수익성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가세미의 ‘소닉 프런티어’의 경우, 닌텐도 스위치를 비롯해 7개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신작들이 흥행에 성공하거나 화제의 신작 계획을 발표한 일본 게임사의 주가도 치솟고 있다. 코나미와 캡콤의 주가는 지난 6개월 동안 각각 25.03%, 28.44%씩 급등했다. 온라인 게임에만 치중해온 한국 게임 업체 상당수가 신작 부재로 매출과 주가 하락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