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최근 연 2%대로 낮아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연초 대비 약 28조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높은 금리 사냥을 위해 일단 잠시 대기 중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 개인 투자자는 미국의 기준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된다는 전망에 채권 금리가 반등하자 채권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다.
◇대기성 자금 석 달 만에 28조 증가
6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이 은행들에서 수시입출식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629조9845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4월(608조9654억원)보다 21조200억원쯤 늘었고, 올 1월(603조3869억원)보다는 약 26조6000억원 늘어났다. 여기에 머니마켓펀드(MMF) 상품 잔액까지 합하면 지난달 5대 은행의 ‘대기성 자금’ 잔액은 1월(618조8500억원)보다 27조9000억원쯤 불어난 646조7700억원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시장을 관망하는 투자자가 많아진 영향이다. MMF는 금융사가 고객 돈으로 단기 금융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초단기 금융 상품으로 입출금이 자유로운 요구불예금과 함께 전형적인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대기성 자금 증가에는 주요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가 최근 연 2%대에 진입하는 등 이자 수익에 대한 매력이 낮아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 정기예금 상품(1년 만기 기준)중 신한·하나·KB국민은행 상품의 기본금리가 연 2%대로 하락했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 금리는 전월 평균 연 3.53%에서 연 2.9%로 낮아졌다. 하나은행의 ‘하나의 정기예금 금리와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 금리도 같은 기간 각각 연 3.56%, 연 3.53%에서 연 2.6%로 떨어졌다. 한 달 새 1%포인트 가까운 하락 폭을 보인 것이다. 전월 평균 금리는 상품 만기 때 적용되는 우대금리가 적용되지 않은 값이다. 다만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실제 가입자들 대부분이 3%대 우대금리를 적용 받고 있어 (은행연합회) 공시상 금리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연 4%대 금리가 적용되는 은행 예금이 있었지만 최근 은행 예금 금리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이다. 각 은행의 예금 금리가 낮아지면서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적금 잔액은 지난달 905조3350억원으로 1월보다 3조7700억원쯤 줄었다.
◇”채권은 그나마 나으려나” 기웃
은행 예금에서 돈을 뺀 투자자들은 채권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3조5708억원 수준이었던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 규모는 지난달 4조5273억원으로 한 달 새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올 1~4월 개인 채권 순매수는 16조원에 육박한다.
최근 미국의 기준 금리 인하 시점 전망이 지연되면서 채권 금리가 그나마 소폭 반등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개인 투자자들이 ‘한전 예금’이라 부르면서 선호하는 한전채 1년물(AAA 등급) 금리는 지난 2월말 연 3.74%에서 3월 말 연 3.62%로 떨어졌다가 지난달 말 연 3.69%로 반등했다. 일반 회사채 1년물(AAA 등급) 금리도 같은 기간 연 3.74%에서 연 3.66%으로 빠졌다가 지난달 말 다시 연 3.71%로 올랐다. 전문가들은 현재 채권 시장에 투자하기 적절한 환경이 갖춰졌다고 보고 있다. 채권 금리가 은행 금리보다 높은 데다, 미국이 연내에 최소 한 차례는 기준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데, 채권 금리가 높을 때 가격이 싼 채권을 미리 사두고 채권 금리가 내려가면 가격이 오른 채권을 비싸게 팔 수 있다. 마경환 GB투자자문 대표는 “미국 금리 인하 전망으로 지난 3월 빠졌던 채권 금리가 다시 오르고 있어, 예금 성격의 채권 보유나 중·장기적인 매매 목적의 채권 투자에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 자금이 유입된 것”이라고 했다.
채권형 펀드로도 돈이 몰리는 분위기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국내 채권형 펀드의 설정액은 48조1175억원으로 집계됐다. 설정액이 47조5017억원인 국내 주식형 펀드보다 6000억원쯤 많다. 특히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한 달간 6931억원 늘어난 반면, 채권형 펀드의 설정액은 2조1625억원 증가했다. 채권형이 주식형보다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