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에선 유명무실해진 KBS·MBC·EBS 등 공영방송에 대한 재허가 제도를 폐지하고, 정부와 공영방송사가 공적(公的) 책임에 관한 협약을 맺고 일정 기간마다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협약 제도가 도입된다.

박성중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간사가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미디어의 공정성·공공성 확립과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정책방향'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04.28. / 인수위사진기자단

박성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간사는 28일미디어 분야 국정 과제 발표에서 “공영방송은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그들만의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국민 신뢰가 추락했다”면서 “영국처럼 정부가 공영방송 BBC와 협약을 체결해 책무를 부과하고 그 이행 여부를 매년 점검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KBS 같은 공영 방송사들은 재허가 심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탈락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재허가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은 종종 공영방송사들이 책임을 손쉽게 방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쉬웠다. 예컨대 KBS의 경우 재허가 때마다 ‘방만 경영 해소를 위해 고액 연봉자 비중을 줄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지만, 이를 제때 이행하지 않아 2019년 시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부 입장에서 KBS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박 위원은 “공영방송은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과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영방송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경영평가 제도를 개선하고 평가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 및 방송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수위가 구상하는 공적 협약 제도는 기존 재허가보다 실효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자면, 협약에 ‘여성 인권 관련 프로그램을 프라임 시간에 연간 100시간 편성한다’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인 조건을 부과할 수 있고, 우리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하는 영국 오프콤은 BBC가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25만파운드(약 4억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영국 정부와 BBC가 맺는 방식의 협약 제도는 현 정부 방통위에서도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정부와 협약을 맺고 이행실적을 점검해오고 있기 때문에 제도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방송법에 공적 협약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 상황에서 법 개정 작업에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차기정부에선 어디에 얼마나 사용되는지 알 수 없었던 KBS 수신료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박 위원은 “수신료를 광고나 사업수입 등 다른 재원과 명확하게 구분해 회계 처리하고, 사용 내역을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겠다”며 “수신료 위원회를 설치해 적정한 금액에 대한 객관적 검토를 하고 수신료 배분 기준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방송 심의 제도는 장기적으로 자율 심의 제도로 전환된다. 박 위원은 “방송 공정성 보장을 위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제도는 구조적 문제 등으로 인해 오히려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면서 “정성적인 평가와 자의적 해석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방송 심의제도를 좀 계량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방송통신심의위 조직에 대해선 “현재의 구조는 그대로 두되 지금까지 쌓인 노하우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어느 시점이 되면 자율심의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민간 방송사 205개가 모인 일본민간방송연맹의 자율 심의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이날 인수위는 ‘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라는 미디어 정책 방향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민영방송에 대해선 복잡한 산업 규제를 과감하게 걷어내고 시장 기능이 잘 작동하도록 할 방침이다. 박 위원은 “미디어의 창의성·자율성을 가로막는 허가·승인 심사와 방송평가를 객관화·명료화하고, 기업의 손발을 묶는 허가·승인 조건도 법과 원칙에 따라 꼭 필요한 경우에만 부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