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이른바 ‘공정 경제 3법', 5·18 민주화운동법 개정안 등 야당이 반대하거나 위헌 시비가 있는 법안 17건을 모두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174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의원 머릿수를 이용해 법을 마음대로 만들거나 바꾸고, 예산안과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단독으로 처리하는 ‘입법 독재’ 행태를 보이면서 국회 본연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총선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가 50.1%로 절반이 넘었지만, 나머지 49.9%만을 대표하는 민주당이 모든 것을 자기들 맘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20일 당 회의에서 “국민들께서는 민주당에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주면서 그만큼의 책임도 맡기셨다. 민주당 의원 모두는 그 책임에 부응해야 한다”며 공수처법 개정안 등 쟁점 17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K-뉴딜 10대 입법 과제’ 관련 31법안, 555조8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도 정기국회 회기 이내 또는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내달 2일까지 다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다만 온종일돌봄특별법과 사회적참사특별법은 그 내용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이를 제외한 15법안은 ‘미래 입법’ 과제로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공수처장 후보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기 위한 요건을 ‘위원 7인 중 6인 이상’에서 ‘위원 3분의 2 이상’으로 바꿔, 야당 측 추천위원 2명의 거부권을 박탈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야당이 동의할 가능성이 없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한 주요 법안을 야당과 협의 없이 모두 강행 처리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말 친여 군소 정당들과 손잡고 제1 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통과시킨 이래 해마다 해온 일방 처리 전술을 올해도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민생당·정의당 등을 끌어들여 의석 과반을 확보한 뒤, 공수처법은 물론 ‘게임의 규칙’인 선거법까지 신속 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했다. 법안 심사를 건너뛰고 제1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꼼수였다.

2014년 야당 시절, 민생회복·민주수호 외쳤던 그들 - 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국회 본청 앞에서 ‘민생 파탄-민주주의 후퇴 박근혜 정부 1년 평가 보고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은 174석 의석수를 앞세워 야당이 반대하고 위헌 논란도 있는 법안 17건을 모두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의 ‘입법 독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진한 기자

민주당이 올해 4·15 총선에서 단독으로 180석을 확보하면서 ‘입법 독재'는 더 심해졌다. 친여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없게 되자, 곧바로 이들을 뺀 완전한 일당 독주를 시작했다. 21대 국회가 개원하자 민주당은 국회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17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나눠 갖는 국회 관례를 깨고, 17상임위를 모두 가져갔다. 국회 본회의에 상임위원장 후보를 올린 뒤 의석 과반수의 득표만 하면 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민주당은 국회의장단 3석 중 야당 몫 국회부의장 1석을 선출하지 않고 비워두는 방식으로, 국회의장단도 완전히 장악했다.

상임위를 장악한 민주당은 곧바로 35조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단독으로 심사했다. 각 상임위의 예비 심사는 민주당 위원장들이 직권으로 하루 만에 끝냈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는 민주당 의원 5명만 들어가 예산안을 마음대로 가감(加減)했다. 이 추경안은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 불참한 채 처리됐다.

민주당이 올해(2020) 4·15 총선에서 단독으로 180석을 확보하면서 ‘입법 독재'는 더 심해졌다.

민주당은 7월 24일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28일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도 단독으로 채택했다. 야당 청문위원들이 두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냈으나 소용없었다. 보고서를 넘겨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두 사람 임명을 강행했다.

그 이틀 뒤에는 ‘임대차 3법’이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민주당은 주택 세입자에게 임대차 계약을 2년간 연장할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이때 전·월세는 종전의 5%까지만 올릴 수 있게 하는 전·월세 상한제 등을 도입하는 법안을 7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해 2시간 만에 통과시키고, 하루 만인 30일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회법에 규정돼 있는 소위원회 심사·보고와 축조 심사, 찬반 토론은 모두 생략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법안을 그다음 날 곧바로 공표해 시행했다. 8월 4일에는 주택을 취득·보유·매매·증여하는 전 과정에 대한 세금을 대폭 올리는 세법 개정안을 비롯해 18법안과 규칙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민주당은 소수 야당일 때에는 정부·여당을 향해 ‘협치’를 요구하곤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8월 전병헌 당시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을 향해 “야당은 적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 상대”라며 “정치와 협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박 대통령에게 “정치는 간데없고 통치만 남아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8월에는 원혜영 원내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21세기형 선진 국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며 “그것은 통치가 아닌 협치 체제 완성”이라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