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금융지주 등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성과급을 포함한 임원 보수를 주주총회에서 심의받도록 하는 ‘세이-온-페이(say-on-pay·주주 투표로 경영진 보수 결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금융사 임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돌려받는 클로백(clawback·환수) 제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찾기로 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임직원의 성과급과 퇴직금에 대해 “돈 잔치”라는 비판이 커지자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이다.
◇임원 보수 주주가 감시한다
금융 당국은 ‘주인 없는 회사’로 통하는 금융회사에서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보수를 결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6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당국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개정해 미국과 영국 등에서 시행 중인 ‘세이-온-페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만든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상장사가 최소 3년에 한 번은 경영진의 급여에 대해 주주총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영국의 회사법도 상장사들이 경영진 급여 지급 현황을 주주총회에 상정해 심의받도록 하고 있다. 주주들이 경영진의 보수가 과도한 수준은 아닌지 따져볼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주로 비판 대상이 되는 경영진의 성과급 수준을 통제하는 데 활용된다.
금융 당국은 이달 중으로 ‘은행권 경영, 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전문가들과 함께 성과급·퇴직금 등 은행의 급여 체계도 개선할 점은 없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임원뿐 아니라 직원 성과급에 대해서도 적정 수준인지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은행이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을 억제하고, 대신 대손충당금 적립 등으로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유명무실해진 클로백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들이 클로백 제도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성과급의 40% 이상은 3년 이상에 걸쳐 나눠 지급하는 성과급 이연(移延) 제도도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함께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금융사뿐 아니라 제조업이나 유통업 같은 비(非)금융사들도 임원 성과급 환수 제도를 두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임원이 경영 문제로 손실을 일으켰을 때 이미 지급한 성과급을 돌려받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도입됐다. 최근 3년 사이에 발생한 문제로 회사가 경영 성과 등에 대한 회계 처리를 수정하면, 회사는 클로백 제도에 따라 임원들의 급여 중 업무 성과와 연동된 성과급을 회수해야 한다. 모든 미국 증시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금융사들의 임원 성과급에 대해 클로백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금융회사 지배 구조 감독 규정’에는 “담당 업무와 관련해 금융사에 손실이 발생하면 성과급도 손실 규모를 반영해 재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클로백’에 해당하는 내용을 내부 규범에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관련 조항을 두고 있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금융 투자 상품 판매나 대출 실행 등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임원 성과급이 삭감되거나 환수되지 않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성과급 가운데 일정 비율은 몇 년 뒤 성과를 확인하면서 지급하는 이연 지급 제도도 개선할 계획이다. 지금은 임원 성과급의 40%를 3년 이상 나눠서 지급하되,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면 나중에 분할 지급하는 성과급을 깎을 수 있게 돼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연 지급하는 성과급을 전체 40%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늘릴지, 분할 지급하는 기간을 3년보다 길게 할지 등을 앞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