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서 특히 여성 연예인에게 던지는 바보 같은 질문 중에 이런 게 있다. 가장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어디예요? 그러면 별별 답이 다 나온다. 눈, 눈썹, 코, 입, 다리, 가슴, 허리, 피부, 엉덩이…. 그러고 한심한 대화가 이어진다. 우아, OO씨 허리! 진짜 허리 라인이 예술이네! 재능 있고 매력 넘치는 프로페셔널들을 불러놓고 왜 그런 걸 묻는 걸까.
연기를 하는 이유, 혹은 노래를 부르는 이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은지, 이런 뻔한 질문만 던져도 훨씬 더 재미있는 대답이 나올 듯한데. 그리고 ‘부위’라는 단어는 사람보다는 동물한테 더 자주 쓰는 말 아닌가? 안심, 등심, 채끝살 등등을 부를 때. 내가 내 외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자기 신체 어느 한 부분에 주목하고 그곳을 다른 곳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한다는 개념도 조금 낯설다.
나는 거울을 보면 그냥 맥 빠진 얼굴 하나가 보일 뿐이다. 귀는 그럭저럭 흡족하지만 입매는 마음에 들지 않고, 눈두덩은 평균 수준이라는 식으로 분석하지는 않는다. 한데 나도 얼마 전 가장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생겼다. 보고 있으면 흐뭇하고, 심지어 자존감이 조금 높아지는 기분마저 든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다. 해서 이 자리를 빌려 공개하는 나의 가장 자신 있는 신체 부위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의 가장 아랫부분이다. 검지보다 중지 쪽이 좀 더 자신 있다. 그곳에는 개에게 물린 흉터가 둘 있다.
얼마 전 아주 잘생긴 시바견에게 물렸다. 물릴 때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고, 피도 별로 흘리지 않았는데, 상처는 길게 났다. 개의 이빨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결국 흉이 졌다. 깨끗이 아물지 않고 흉터가 남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사연은 이렇다. 부모님이 1년 전에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하셨다. 이 회색 토이 푸들은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동생 가족의 사랑까지 듬뿍 받았다. 나는 전에 잘 찾지 않던 부모님 댁에 자주 놀러 가게 되었다. 댁에 가면 식사를 하고 부모님과 함께 강아지를 산책시키곤 했다.
사고가 벌어진 날 우리 개는 길이 조절이 가능한 가슴 줄을 처음으로 착용했다. 평소에는 개가 뛰어나가는 만큼 줄이 자유롭게 풀리지만 손잡이 부분의 버튼을 조작해서 줄을 잠그거나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요령을 머리로 아는 것과 손에 익히는 것은 다른 일이어서, 모든 식구가 이 기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 내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데 맞은편에서 잘생긴 시바견이 왔다. 견주는 인상 좋은 노신사였고, 시바견도 가슴 줄에 단단히 매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 푸들이 갑자기 시바견을 향해 미사일처럼 달려들었다. 같이 놀고 싶었던 것 같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아버지는 줄을 잘 제어하지 못했다. 그 상황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한 시바견은 우리 개를 사납게 물었다. 개 두 마리가 엉겨 붙고 사람들이 당황했을 때 한발 뒤에서 걷던 내가 얼른 뛰쳐나가 시바견의 입속으로 내 손을 밀어 넣었다. 시바견을 떼어놓고 놀란 우리 푸들을 품에 안고 시바견 견주에게 모든 게 우리 잘못이라고 말하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흥분을 완전히 가라앉히지 못한 시바견에게도 잘 가, 미안해, 하고 인사했다. 그렇게 해서 내 손에는 흉터가 남았다.
다행히 우리 푸들은 입고 있던 옷이 찢어졌을 뿐 그다지 다치지는 않았다. 녀석한테는 트라우마 같은 것도 전혀 남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뒤에는 천연덕스럽게 산책을 계속했다. 우리 가족은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개는 동물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는 견주의 책임이라는 것. 개는 사람을 문다는 것. 모두 그 뒤로 한층 더 주의해서 개를 살핀다.
손가락 끝의 흉터를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나는 개를 구해낸 사람이다. 이 상처는 내가 여차하면 그 정도 용기는 발휘하며, 갈등이 빚어질 수 있는 사안을 제법 어른스럽게 마무리할 줄 아는 지혜도 지녔다는 증거다. 내게는 내가 잘한 일은 잘 생각하지 않고 잘못한 일만 자꾸 곱씹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 흉터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