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의 한 고물상. 김모(86)씨가 폐지와 헌 옷, 청소 밀대, 삼발이 빨랫대 등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김씨가 이날 오전 6시부터 5시간 동안 모아온 고물만 모두 35㎏. 이걸 고물상에 넘기고 1만1300원을 받았다. 그는 “오래간만에 폐지나 고물 값이 올라 폐지로만 이런 구루마(’수레’를 가리키는 비표준어) 하나 가득 채워서 5000원 넘게 벌 수 있다”며 “돈이 되니 일하는 게 재미가 있어 하루에 많으면 네 번도 온다. 이따 오후에 또 올 것”이라고 했다. 이 고물상 사장 한모(69)씨는 “코로나 터지고 재작년 이맘때 폐지 수거 노인이 하루에 10번 왔다면 지금은 50~60번 방문한다”며 “돈이 되니 한 사람이 하루에 총 200㎏이나 되는 폐지와 고물을 팔고 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여파로 나타난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국내 고물상 주변 풍경을 바꾸고 있다. 각종 금속이 포함된 고물이나 폐지 값이 오르면서 최근 전국 곳곳에 폐지를 모으는 고령층이나 고물 수거상이 늘어나는 중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수요가 줄면서 한동안 폐지나 고물 값은 하향 안정세를 이어와 폐지나 고물을 모으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환경부 등에 따르면 수도권 기준 2020년 3월 1㎏당 60원이었던 폐골판지 가격은 지난 3월 기준 138원으로 올랐다. 고철 등을 가리키는 철스크랩 시세도 이 기간 1㎏당 193원에서 486원이 됐다. 구리나 알루미늄 소재 고철 값도 크게 치솟은 상황이다. 경기도 한 고물상 사장은 “상급품 구리선의 경우 ㎏당 1만2000원에 달한다” 며 “고물업에 종사한 지 15년째인데 지금이 가장 비싸다”고 말했다.
폐지·고철을 팔면 쏠쏠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퍼지며 고물상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지난 21일 서울 구로구에서 만난 임모(81)씨는 지난달부터 고물 수집을 시작한 새내기였다. “고물 값 올랐다는 얘기 듣고 아들 몰래 용기 내 와보길 잘했다”는 그는 “오늘만 두 번 왔는데, 한 번은 종이만 주워와 4300원을 받았고, 한 번은 폐지와 쇠로 된 접이식 손수레를 모아 5500원을 벌었다”고 했다. 경기 시흥시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임모(39)씨는 최근 프라이팬, 냄비, 철제 바구니, 헌 옷 몇 벌을 고물상에 넘기고 8000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고물 값이 올랐다고 해서 중고 장터 대신 고물상에 가봤는데, 큰돈은 아니지만 발품 판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경기도 화성 등 일부 지역 고물상 주인들 사이에선 사라졌던 ‘나카마’가 나타나 화제가 됐다고 한다. 나카마는 원래 일본말로 ‘동료’ 등을 뜻하지만, 트럭을 몰고 지역을 옮겨 다니며 컴퓨터나 오디오 등 특정 품목의 고물을 사들이는 중간상을 뜻하는 은어다. 경기 화성시의 한 고물상 주인은 “나카마는 지난 10여 년간 거의 보기 드물었는데, 최근 폐자재 값이 워낙 오른 탓에 주변에 나카마가 많아졌다”고 했다.
최근 영등포구 쪽방촌 주변에서는 인근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모아 내놓는 폐지를 두고 신경전도 벌어진다고 한다. 이 쪽방촌에 사는 이모(63)씨는 “요즘 폐지 값이 올랐다며 로또라도 한 장 사보려고 (폐지를) 서로 받고 싶어 한다”고 했다.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먹자골목에서 고물을 수집 중이던 김모(73)씨는 “예전에는 폐업하는 식당에서 ‘힘드시죠’ 하며 버리려 했던 고철을 거저 나눠주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없다. 본인들이 직접 내다 팔 수 있어서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철거 현장에서 고철을 훔쳐 나오는 사례도 생긴다. 지난달 25일 한 40대 남성이 전남 여수시 한 공장 철거 현장에 몰래 들어가 공업용 전선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3차례에 걸쳐 7000만원 상당의 공업용 전선을 훔쳤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공업용 전선에 재활용 가능한 금속이 포함돼 있어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생활비를 벌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