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고 도로를 역주행하다 반대편에서 오던 운전자를 폭행한 혐의로 올해 초 기소됐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는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A씨가 과거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징역형을 구형(求刑)했지만, 법원은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에는 “진지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문구가 적혔다.

하지만 A씨가 제출했던 반성문은 A씨가 직접 쓴 게 아니라 ‘반성문 대필 업체’가 돈을 받고 대신 써준 것이었다. A씨 변호인은 “의뢰인에게 반성문을 꼭 내야 한다고 하니 대필업체와 함께 썼다는 반성문을 가져왔다”며 “업체들도 노하우가 쌓여 의뢰인 개인사까지 꼼꼼히 반성문에 반영한다. 어지간하면 대필 여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했다.

감형을 바라는 피고인들을 상대로 한 ‘반성문 대필업’이 성행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살인·성범죄·폭행 등 대부분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에 ‘형(刑)의 감경 요소’ 중 하나로 ‘진지한 반성’을 정해놨다. 2019년 선고된 1심 사건 7만6023건 중 3만304건(39.9%)이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감형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어떻게든 감형을 받고자 하는 피고인들이 돈을 주고 반성문을 사서 재판부에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범인 전주환(31)도 피해자와 관련된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부에 두 달치 반성문 수십 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현직 행정사,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 등이 모여 아예 반성문 대필만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20일 반성문 대필 업체 중 한 곳에 ‘음주운전으로 상대방을 다치게 해 재판을 받게 됐다’며 대필을 의뢰하자 “A4 용지 2장 분량의 대필 반성문 작성에 6만원 정도를 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필인 것을 알아차릴 위험은 없느냐’는 질문에 “10여 년 경력의 반성문 전문 작가가 있다”고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호소력 있게 쓰고 대필로 의심받지 않아야 한다”며 사고 경위와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부터 가정사와 직장 경력, 전과 여부 등을 꼼꼼히 캐묻기도 했다.

전문 대필업체뿐 아니라 로펌이 반성문을 대신 써주는 경우도 있다. 한 중견 로펌은 아예 웹사이트에 반성문 대필 가격표를 내걸고 ‘자필보다 대필이 효과적인 이유’를 홍보하고 있다. 이 로펌은 “반성문 수준을 (법원이) 상향해 요구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선처 의지가 소상히 피력돼야 결과에 유리하다”고 했다. 가격표를 보니 대필 상담 후 10만원을 지불하면 2~3일 이내에 5페이지 분량의 반성문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한 변호사는 “일부 소형 로펌들은 반성문이나 탄원서 대필을 전문적으로 하며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삼고 있다”고 했다.

법원 관계자들은 “판사들이 반성문 대필 여부를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때문에 판결 선고 시 반성문 제출 여부를 되도록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한 재경지법 형사부 판사는 “매일 거의 똑같은 내용의 반성문을 보내는 ‘양치기 반성문’이 많아져 판결에 반성문을 최대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현직 고법 부장판사는 “구치소 수용자가 다른 수감자들 반성문을 대필해 필체를 보고 알아차린 적은 있지만, 솔직히 전문 업체에서 대필해 제출하면 판사로서 알 도리가 없을 것”이라며 “우리 법 체계상 반성 여부를 감경 요인에서 아예 빼는 것은 어렵고,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 회복 등 정교한 반성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대법원 양형위도 지난 3월 제115차 회의에서 ‘진지한 반성’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등을 따져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