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송편은 손바닥 송편 아버지 잡수라고 만드신 송편. 할머니 송편은 조각 밤 송편 우리들 먹으라고 만드신 송편”이라는 동요 ‘송편’은 동아일보 1933년 10월 15일 자에 악보와 함께 실려 있다. 지금은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나 어머니, 할머니 등 온 가족이 추석을 맞이하여 송편을 빚는 정겨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4분의 4박자에 바장조, 16마디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교적 쉽게 부를 수 있다.

현대 대중가요와 달리 광복 이전 노래에서는 추석을 소재로 한 것을 여럿 찾을 수 있다. 이춘풍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작곡하여 이은파가 노래한 ‘추석’과, 이고범이 작사하고 김월신이 작곡하여 김성파·김윤심이 노래한 ‘추석타령’은 모두 1934년에 발매된 대표적인 추석 노래다. 다행히 음원이 남아 있는 이 노래들을 통해 1930년대 추석 풍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쌀을 찧어 떡을 치고 실과(實果) 따서 곁들이니 추석놀이 잔칫상에 집집마다 웃음일세”라는 ‘추석’의 노랫말은 오늘날의 추석 상차림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또한 추석이면 빼놓을 수 없는 줄다리기와 씨름이 ‘추석’과 ‘추석타령’에 모두 등장하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보존할 전통 놀이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서 달라진 시대상을 감지할 수 있다.

음악적으로는 두 노래 모두 전통 가요에 바탕을 둔 신민요에 해당한다. 그 당시 표현을 빌리면 신민요가 ‘조선 냄새가 나는 노래’라서 신식 음악으로 유행한 재즈송이나 트로트보다 우리 고유의 풍속을 노래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추석타령’은 “얼싸절싸”나 “에헤야” 같은 조흥구를 통해 추석의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기생 출신의 이은파가 전형적인 민요 창법으로 노래한 것도 한몫했다. 이는 1930년대에 접어들어 ‘준비된 연예인’인 기생 출신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에 진출하여 신민요를 유행시킨 상황과도 맥이 닿는다.

어느덧 추석이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이다 보니 추석 본래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그래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듯이, 이날만은 풍요와 행운을 상징하는 보름달처럼 우리 마음도 둥글둥글하고 넉넉하면 좋겠다. 조선일보 1933년 10월 7일 자에 수록된 동시 ‘추석’에는 “오늘은 햇송편을 먹을 수 있죠. 그러나 수동인 울고 있어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난다고. 송편도 안 먹고 울고 있어요”라며 어머니 생각에 가슴 아파하는 이웃을 보듬어 안으려는 화자의 따뜻한 마음이 나타나 있다. 때로 명절이면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 부디 이번 추석에는 소외되는 사람이 없기를 달 보며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