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7일 울산 한 호텔에서 조선업 협력사 43곳이 참여한 채용 박람회가 열렸다. 최근 잇따른 수주로 조선소 일감이 늘자, 조선업 협력 업체들이 400여 명 채용을 목표로 박람회를 연 것이다. 하지만 이틀간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는 240명뿐이었다. 이 가운데 실제 기업들이 뽑은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지난달 26~27일에도 울산에서 IT·서비스·조선 업체 60곳이 참여한 채용박람회가 열렸는데, 구직자들은 IT·서비스 업체에만 몰리고, 조선 업체 부스는 썰렁했다. 행사를 주관한 울산일자리재단 관계자는 “두 차례 채용 박람회에서 조선 업체들이 뽑은 인력은 10명 안팎”이라며 “일은 힘들고 임금은 적다며 구직자들이 조선 업체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은 한국이 글로벌 점유율 1위를 달리는 대표 제조업이다. 최근 친환경 선박 발주가 급증하고 있지만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운송·운수업, 중소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해가 갈수록 청년층이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는 데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특근을 못 해 근로자들의 수입마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청년 실업난에도 특정 업종은 구인난을 겪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구직자들이 힘든 제조업 일자리를 외면하고 기업은 사람을 못 구하는 것은 인력 수요·공급 시스템에 구조적으로 경고등이 켜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 근로자 1.7만명 감소
국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올 3분기에 연간 수주 목표를 조기 달성했지만 일손 부족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다. 당장 올해 수주한 일감을 본격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내년부터는 인력 부족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전체 근로자 수는 2017년 10만9901명에서 9만2738명(8월 기준)으로 1만7163명 감소했다.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장기 불황으로 조선업 종사자들이 건설 등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내 협력사들이 다시 직원을 뽑으려고 해도 오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양충생 현대중공업 사내협력회사협의회장은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용접·도장 등 주요 인력들이 대거 건설 현장으로 이직했다. 그쪽이 상대적으로 수입이 많아 근로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울산 지역 한 조선 협력사 대표는 “올 초 150여명이었던 직원이 115명으로 줄었다. 그동안 신규 직원은 한 명도 뽑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선업 현장 직원 10명 중 7명은 사내 협력사 소속이기 때문에 협력사가 제때 직원을 뽑지 못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조선 협력사 관계자들은 “야외에서 작업하는 특성상 태풍·폭설·폭우 때는 일을 하지 않고 맑은 날 일을 몰아서 해왔다”면서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특근이 없어지면서 수당이 줄어든 것도 인력이 계속 떠나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이 인력난으로 뿌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운송도 1.6만명 부족
조선업뿐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미충원 인원이 가장 많은 직종은 운전·운송직으로 1만6000여 명(1분기 기준)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년 대비해서 미충원 인원이 3000명 증가했다. 미충원율이 무려 36.4%에 달한다. 가뜩이나 물류 대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근로자들도 태부족해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더라도 실업급여·청년수당 등을 받으며 버틸 수 있는 것도 구인난의 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지원이 구직자들의 근로 의욕을 약화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이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도 경쟁력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