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제65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 주연 배우로 참석했던 장-루이 트랭티냥. 영화는 이 해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AP 연합뉴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남과 여’(1966)의 주연을 맡았던 프랑스 배우 장-루이 트랭티냥(91)이 17일 남프랑스 자택에서 가족들이 임종한 가운데 별세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는 2018년에 전립선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1960~70년대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르 피가로는 “갑자기 모든 빛이 사라졌다. 예고도 없이 모든 것은 흑백으로 바뀌었다”고 했고, 에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그는 프랑스 영화와 함께 우리 삶에 동행했던 경이로운 예술적 재능, 부드러운 목소리였다”고 애도했다.

2012년 5월 제65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 주연 배우로 참석했던 장-루이 트랭티냥(왼쪽)과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 영화는 이 해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A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장-폴 벨몽도가 유쾌한 익살꾼이고, 장 가뱅이 노동계급의 영웅이었으며 모리스 슈발리에가 부드럽고 세련된 연인이었다면, 그는 결점을 가진 보통의 남자를 연기했다”고 했다.

남프랑스의 부유한 기업가·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법대에 진학,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 했던 그는 연극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인생 행로가 바뀌었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출연한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1956)로 프랑스에서는 이미 스타덤에 올랐다. ‘남과 여’는 당시까지 프랑스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고, 이후 그리스 군사 정권과 정치인 암살 사건을 극화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정치 스릴러 ‘제트’(1969)로 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당대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1966년 5월 영화 '남과 여'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축하연에서 클로드 를루슈 감독, 작곡가 피에르 바루, 여주인공 배우 아누크 에메, 남주인공 배우 장-루이 트랭티냥(왼쪽부터). 트랭티냥은 17일 남프랑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AFP 연합뉴스

이후 약 30년간은 매년 세 편꼴의 영화에 주로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꾸준히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1970),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레드’(1994), 장-피에르 주네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1995) 등에서 시대를 풍미한 명감독들과 작업했다.

2003년 친딸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고 은둔하다 복귀작으로 선택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80대 노부부를 통해 병고(病苦)와 죽음, 사랑의 의미를 성찰한 수작.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2012년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무르'의 여주인공 에마뉘엘 리바, 미하엘 하네케 감독, 남주인공 장-루이 트랭티냥. 트랭티냥은 17일 남프랑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AFP 연합뉴스

영화 ‘남과 여’와의 인연은 평생 지속돼, 1986년작 ‘남과 여: 20년 후’에 이어 2019년작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에도 1966년작의 상대역 여배우 아누크 에메(90)와 함께 출연했다.

말년에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는 “사람은 여든 이상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이건 또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나는 홀로 있을 때도 여전히 행복하다. 내게는 내적인 삶이 있다”고 했다.

생전의 그는 “세계 최고의 배우란 가장 많이 느끼고, 가장 적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타고난 배우가 아니어서 본능적으로 연기하지 못하니 꼼꼼하게 준비한다. 내가 완전히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은 카메라 앞에 서는 그 순간 뿐”이라고도 했다.

1986년 5월 영화 '남과 여: 20년 후'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아누크 에메와 장-루이 트랭티냥.(왼쪽부터) 트랭티냥은 17일 남프랑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