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김소연 시인이 새로 펴낸 산문집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의 첫 문장. ‘딸’들이라면 이 문장이 낯설지도, ‘미움’으로만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투병 생활을 시작한 엄마가 “엄마를 끝내고 나의 자식이 되었다”고 말한 시인은 “이제는 엄마를 싫어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1993년 시집 ‘현대시 사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섬세하고 적확한 문장으로 사랑받았다. 산문집 ‘한 글자 사전’으로 지난달 일본 번역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신간에서 유년 시절을 돌아본 시인은 한 시절에 대한 추억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고 다채롭게 해주는가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그처럼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줄, ‘일상의 회복을 위한 책’ 다섯 권을 시인이 꼽았다.
건강을 강조하는 문화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강조가 아니라 강요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할수록,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짙고 드넓은 그늘을 드리워가는 것이 안타깝다. 나 또한 건강에 대해 제법 긴 시간을 집착하며 살았는데, 그러다 자연스럽게 질병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질병을 이해할수록,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읽었을 때에 더욱 그랬다. 이 책은 두 여성 학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암으로 투병 중인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투병’에 대하여 함께 사고한 의료 인류학자 이소노 마호. 이 두 사람은 ‘아픈 몸’에 대해 전력을 다해 이해하며, 필연의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아픔과 함께한 삶이 어떤 사유를 낳는지를 목격하고는, 나는 나와 내 주변을 다른 시선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