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부진과 이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라는 우리 경제의 어두운 터널이 길어지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예상보다 더디면서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는 부진하고 하반기에 회복된다는 뜻)’ 기대도 멀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무역 적자의 주요 원인이었던 에너지 수입이 크게 줄었는데도 수출 부진이 계속되면서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수출전략회의를 열고 바이오·원자력·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 기반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장기 프로젝트로 당장 수출 부진을 해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8개월 연속 수출 감소, 15개월 연속 적자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수출은 작년보다 15.2% 감소한 522억4000만달러(약 69조원), 수입은 14% 감소한 543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1일 발표했다. 무역수지는 21억달러 적자다. 수출은 8개월 연속 감소했다.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인데 외환 위기 직전 29개월(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최장이다.
5월엔 우리나라 수출의 양 축인 반도체·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과 지역의 수출도 부진했다. 지난해 수출 1~3위 품목인 반도체(-36.2%)·석유제품(-33.2%)·석유화학(-26.3%)이 나란히 30% 안팎 급감했다. 반도체 수출은 10개월째 감소했다. 주요 수출 15품목 중 13품목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지역별로 지난해 1~2위 시장이었던 중국과 아세안 수출이 20.8%, 21.2% 급감했고, 4월까지 긍정적 흐름을 보이던 미국·EU(유럽연합) 등 선진 시장 수출도 5월엔 각각 1.5%, 3% 줄었다. 주요 지역 중 수출이 늘어난 곳은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수출이 급감했던 독립국가연합(CIS·78.8%) 한 곳뿐이었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제조업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여파가 확대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제 유가와 광물 가격 안정화는 수입액 감소에는 기여했지만 반대로 주요 수출 품목인 석유제품·이차전지의 수출 단가 하락을 가져오며 수출 감소의 요인 중 하나가 됐다.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올 초 기대와 달리 무역수지나 수출 회복이 더디다”며 “하반기 반등 시그널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수출이 장기적으로 둔화하는 추세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이 경제를 이끄는 모습을 다시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비중 큰 중국의 부진 여파…정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수출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 정부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5차 수출전략회의를 열고 바이오·원자력·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 기반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바이오와 같은 첨단 산업 클러스터 육성을 위해선 국제 교류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지난 미국 방문 때 협의한 한국과 보스턴 간 ‘바이오 동맹’이 서울대병원과 MIT 간의 디지털 바이오 연구협력 모델 추진 등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파트너십이 아니라 얼라이언스(동맹)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육성법으로 규정한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원자력, 우주항공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의 기반이 되는 클러스터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클러스터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 벤처캐피털(VC) 등이 모여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기업을 육성하는 공간이다.
특히 첨단 바이오 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8~9월 중으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개정해 동물세포 배양·정제 기술과 같은 바이오 의약품 관련 핵심 기술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기로 했다. 기업이 국가전략기술 관련 시설에 투자하면 15~25%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올해 한시적으로 10%의 혜택을 추가로 받는다. 2025년까지 혁신적 바이오 의약품 개발과 수출 전 단계에 투자할 수 있는 1조원 규모의 메가펀드를 조성하고, 데이터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위해 100만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해 올해 상반기에 2만5000명분의 데이터를 먼저 개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