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퇴근 시간 무렵, 서울숲역 인근 언더스탠드에비뉴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컨테이너 박스들 사이로 정장을 차려입은 기업 대표들과 구청 관계자, 주민들이 속속 모여든 것이다. 성동구가 성수동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주최한 ‘성수 타운매니지먼트 출범식’이 열리는 자리였다.
‘타운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는 주민과 기업, 임대인, 임차인, 지자체가 모두 참여해 도시 환경을 함께 가꾸고 관리하는 민·관 협력 지역관리 모델을 뜻한다. 지역 내 환경관리, 커뮤니티 활동, 주민 축제 등 전반에 걸친 공동 운영과 의사결정이 특징이다. 민관 협력 조직을 중심으로 우범지대를 세계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BID(사업진흥지구·Business Improvement Districts) 제도, 부동산 기업과 지자체가 협력해 상권을 활성화시킨 도쿄 마루노우치 지구의 ‘에어리어 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인 해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두 사례 모두 지역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부담금 및 후원금 등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지역 부동산 가치와 매출 증대라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성수동이 첫 도입 지역이다.
성수동은 과거 철공소와 구두 수선점, 자동차 정비업소 등이 밀집한 준공업지역이었다. 2014년 도시재생 시범지구로 선정된 이후, 붉은 벽돌 건축물의 재해석과 소셜 벤처 유치, 팝업스토어와 같은 신선한 문화 실험이 이어지며 트렌디한 문화 명소로 탈바꿈했다. 10년 사이 소셜벤처는 12개에서 540여개로, 사업체 종사자는 약 8만2000명에서 12만500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성수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300만명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타임아웃’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은 임대료 급등, 팝업스토어 난립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 인파 과밀 등 부작용도 동반했다. 10평 기준 하루 임대료가 100만원까지 치솟으면서 소규모 브랜드의 진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도시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도록 유지하기 위해 성동구가 꺼내든 해법이 바로 타운매니지먼트다.
이날 성수 타운매니지먼트 출범식에는 SM엔터테인먼트, 무신사, 크래프톤을 비롯한 50여개 기업과 지역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개회사에서 “이제는 행정이 앞장서 끌고 가는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성장이 전체의 성장이 되도록 연결하고 조율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면서 “성수 타운매니지먼트는 정부가 강조하는 지방 균형발전과 지역 주도 성장 전략에도 부합하는 선도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 기업 대표들도 축사를 통해 “상생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민간의 역할”을 강조했다.
축사가 끝난 뒤에는 주요 기업들의 실천 전략 발표가 이어졌다. 무신사는 자사 일부 공간을 소상공인 창업 지원 매장인 ‘소담상회’로 전환한 사례를 소개하며, 공간 기여와 금융 연계 등 사회공헌형 모델을 제시했다. 이어 크래프톤은 2028년 성수 본사 이전을 앞두고 타운매니지먼트 전담 인력 채용 및 관련 부서 설립을 예고했다. 도시문화 플랫폼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은 창작자와 공방, 로컬 브랜드가 연결되는 커뮤니티 기반의 ‘위메이크 성수’를 선보였다. 팝업스토어 부작용에 대처할 방안도 제시됐다. 팝업스토어 플랫폼 ‘스위트스팟’은 8000회 이상의 팝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팝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내놓았다.
성동구는 이들 민간의 기여를 기반으로 타운매니지먼트의 실질적 성과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병행 추진한다. 첫 번째로 선보인 프로젝트는 뚝섬역 인근 성수산업혁신공간에 마련한 ‘공공 팝업스토어’다. 높은 임대료로 팝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브랜드들이 저렴한 가격에 참여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성수동 중심가이자 직장인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어 중소 브랜드의 홍보와 실험 공간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첫 팝업스토어는 직장인들이 관심 가질 만한 소품, 책, 먹거리 등으로 구성돼 30일까지 운영된다. 구는 향후 관내 30여개소의 공개공지 등 유휴공간을 활용해 공공팝업 운영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성동구는 타운매니지먼트의 제도화를 위해 하반기 중 ‘지역통합관리 조례(가칭)’를 제정한다. 별도의 타운매니지먼트 위원회를 구성해 지역 내 공공공간 활용과 사업 결정 등을 주민과 기업이 함께 결정하는 구조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위원회에는 지역기업, 전문가,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해 사업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핵심 기구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구 관계자는 “행정이 직접 관할하거나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행정 권한과 공간 자원을 민간과 공동으로 조율하고 운영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타운매니지먼트 사업의 첫 시험대가 된 성수. 성동구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