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헌혈자의 날’ 행사가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며 마무리됐다. 헌혈자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우리가 몰랐던 진짜 영웅들, 우리가 마주할 진짜 영웅들’이라는 슬로건 앞에서 기념촬영 중인 관계자들의 모습.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제공

지난 14일은 일상 속 영웅들을 위한 특별한 기념일, ‘헌혈자의 날’이었다.

‘헌혈자의 날’은 국제 헌혈운동 관련 기관들이 2004년부터 제정한 세계적인 기념일이다. 이 날은 ‘ABO 혈액형 발견’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미국 병리학자) 박사의 생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21년부터 6월 14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헌혈문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22회 세계 헌혈자의 날 기념행사(대한민국 법정기념일 제정 4년차)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헌혈은 곧 연대…대한민국을 지켜온 헌혈의 역사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헌혈이라는 실천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자리 잡아 왔는지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우리나라는 고통스러운 역사적 순간마다 헌혈의 의미를 증명해왔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의 격동 속에서도,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참사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도 누군가는 말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일상을 멈춰 세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시민들은 조용히 ‘헌혈의 집’을 찾았다.

이처럼 헌혈은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공동체가 함께 나아가기 위한 연대의 상징이자 생명 나눔의 실천이었다.

◇인구구조 변화의 위기 속 ‘헌혈 문화’ 확산

하지만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혈액 수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헌혈의 주축이었던 10~20대 비중은 2015년 77%에서 지난해 54.8%까지 감소했다. 반면 수혈 수요는 고령 인구 증가로 해마다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의 헌혈 감소는 혈액 수급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10~20대 대상으로 맞춤형 헌혈 홍보에 나서고 있다. △게임사 넥슨과의 헌혈 컬래버레이션 캠페인 △청소년 헌혈 서포터즈 ‘레드캠페이너’와 대학생 ‘헌혈서포터즈’ 운영 △헌혈 캐릭터 ‘나눔이’ 굿즈 제작과 SNS 콘텐츠 강화 등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대표 사례다.

또한 중장년층으로의 헌혈 확대를 위한 기반도 마련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실질적인 헌혈증진을 위해서는 헌혈 참여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헌혈자 예우 강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헌혈자들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헌혈유공패’와 ‘블러드도너 컬렉션’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400회 이상 헌혈자에게 ‘헌혈 유공자의 집 명패’를 수여한다. 이로써 우리 사회의 영웅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헌혈 공가제도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 헌혈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부·지자체와 함께 정책적 뒷받침도 추진 중이다. 안정적인 혈액 재고 확보를 위한 기업과의 협업 캠페인과 맞춤형 이벤트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는 다회 헌혈자에 대한 감사와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헌혈 유공패(①)와 블러도너 컬렉션 12종(②)을 수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헌혈자의 자긍심을 높이고 헌혈자가 존경받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한적십자사·보건복지부 공동으로 ‘헌혈유공자의 집 명패(③)’도 수여하기 시작했다. ④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25 세계 헌혈자의 날’ 기념행사는 헌혈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자리 잡아 왔는지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 ‘안전하고 편리한 헌혈 환경’ 구축

생명 나눔이 일상 속 실천으로 정착하려면 접근성과 편의성 확보도 중요하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헌혈의 집이 없는 지역에서도 정기적으로 헌혈할 수 있도록 헌혈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154개소 헌혈의 집과 함께 헌혈버스 92대를 배치해 단체 헌혈 장소로 직접 찾아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수십 년간 혈액 사업의 중추로서 국민 생명을 지켜왔다. 또 혈액 안전시스템 고도화는 물론, 검사 정확도와 인프라 개선에 힘써왔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이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헌혈은 의료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선물’이다. 단 한 사람의 헌혈이 백혈병 환자 생명을 살리고, 수혈이 필요한 아이 부모에게 다시 웃음을 되찾아준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되어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기적이다.

◇체험으로 만난 ‘진짜 영웅’…시민과 함께한 광화문

이번 헌혈자의 날 기념행사에서는 헌혈에 대한 인식 개선과 참여 유도를 위한 다양한 시민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히어로 챌린지’라는 이름의 부스에서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참여할 수 있는 건강 관련 놀이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적십자(RCY)와의 연계 프로그램 △헌혈공모전 수상작인 동영상·포스터·수기 전시회 △헌혈자·수혈자 인터뷰 영상 등은 생명 나눔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민간기업 부스에는 생명나눔 캠페인에 동참한 기업들이 참여해, 헌혈 문화 확산의 민관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넥슨·녹십자웰빙·대상그룹 등은 MZ세대와의 소통과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을 함께 추구하며 주목받았다.

기념식 이후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헌혈버스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명 한 명의 헌혈이 또 다른 생명의 희망이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말없이 팔을 걷고 있다. 오늘도 조용히 생명을 살리는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짜 영웅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조선일보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