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맨 오른쪽)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기업형 벤처캐피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방문해 LG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신기술을 살펴보고 있다. /LG그룹 제공

LG는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ABC’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집중적인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ABC는 AI(인공지능), Bio(바이오), Clean tech(클린테크)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LG는 2028년까지 5년간 1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할 계획인데, 이 가운데 50조원 이상을 미래 성장 사업과 신사업에 쏟아붓기로 했다. LG 관계자는 “현재 LG의 주력 사업인 자동차 부품과 배터리도 20~30년가량의 기술 개발과 투자가 뒷받침된 결과”라며 “ABC 투자도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사업 준비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LG의 AI 연구·개발과 혁신은 ‘AI 싱크탱크’인 LG AI연구원에서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21년 3000억 파라미터 규모의 AI 모델인 ‘엑사원 1.0’을 발표한 이후 꾸준히 후속 모델을 내고 있다. 파라미터는 인간 뇌에서 신경망 연결부(시냅스) 역할을 하는 매개변수 개수를 뜻하는 것으로, AI의 성능을 보여주는 지표다. 작년 8월에는 거대 언어 모델(LLM)인 ‘엑사원 3.0’을 국내 최초로 오픈소스(개방형)로 공개했고, 같은 해 12월엔 한층 개선된 ‘엑사원 3.5’를 선보이는 등 생성형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엑사원 3.5를 바탕으로 기업용 AI 에이전트(비서) 서비스 ‘챗엑사원’을 개발해 LG 임직원을 상대로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광모 회장도 지난해 6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반도체 설계 업체 ‘텐스토렌트’와 AI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를 직접 찾는 등 AI 최신 기술 동향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있다. LG 측은 “AI가 향후 모든 산업에 혁신을 촉발하며, 사업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구 회장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행보”라고 했다.

바이오 분야에선 세포 치료제와 같은 혁신 신약을 개발해 암을 정복하고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핵심 사업부는 LG화학의 생명과학본부다. 이 본부는 지난 2023년 사상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1조 2000억원)했다. 매년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미국 리듬파마슈티컬스사에 약 4000억원 규모의 희귀 비만증 신약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LG화학은 항암 영역의 혁신 신약을 중심으로 글로벌 신약 공급 파이프라인을 확보해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구광모 회장도 지난 2023년 전 세계 바이오 기업·연구기관이 밀집한 미국 보스턴의 항암 연구 기관인 다나파버 암센터와 주요 스타트업이 밀집한 랩센트럴을 찾아 최신 바이오 기술 동향을 살폈다.

클린테크 분야에선 바이오 소재, 신재생에너지 산업 소재, 폐배터리 재활용, 전기차 충전 사업 등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대표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이 재생에너지 활용 등 클린테크 분야 역량 강화를 위한 신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LG는 자체 혁신뿐 아니라 ABC 분야의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등 협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LG 주요 계열사 7곳이 출자해 조성한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운영 중인데, 현재까지 80여 곳의 스타트업·펀드에 3억6000만달러(약 5100억원)를 투자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미래 성장 동력인 ABC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