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암을 극복 중인 전은주씨(오른쪽)와 그의 주치의인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전은주(경기도 남양주시·55세)씨는 암 가족력이 없었다. 옆구리 통증이 생겨 병원에 갔다가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 상태로라면 남은 생은 7∼8개월. 이름조차 생소한 암이 막막했지만, 약이 희망을 가져다줬다. 전은주씨는 지난 2월부터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지도로 면역항암제 더발루맙(제품명 임핀지, 아스트라제네카)을 활용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6월에 받은 CT 검사에서 종양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관찰됐다. 활성화된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다.

초기 증상 없는 담도암 “4기에 진단받아”

전은주씨가 진단받은 ‘담도암’은 말 그대로 담도에 생긴 암이다. 담도는 지방의 소화를 돕는 담즙이 간에서 십이지장까지 이동하는 통로로, 나뭇가지 모양으로 간 내외부에 걸쳐 있다. 담도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 이에 환자의 약 70%는 수술로 암을 절제할 수 없거나 이미 암이 전이된 상태에서 암을 진단받아 항암 치료를 고려하게 된다. 환자의 5년 생존율 역시 28.9%에 불과하다.

전은주씨 역시 “암을 진단받기 전 1년간 몸이 유독 피곤하고, 아팠으나, 나이가 있다 보니 갱년기 증상으로 치부하고 넘겼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옆구리가 아파 병원에 갈 때만 해도 암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대학병원에서 진단받은 것은 간내담도암 4기였다. 오른쪽 간에 지름 8㎝가량의 거대 종양이 있었고, 임파선과 뼈로도 암이 전이돼 있었다. 이미 수술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말기 환자 여명 ‘7개월’… 장기 생존 가능케 한 더발루맙

전은주씨는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기존에 쓰이던 세포독성항암제인 젬시타빈, 시스플라틴에 2022년 11월 국내 도입된 면역항암제 더발루맙을 더한 ‘3제 병용요법’을 시작한 것이다. 그간 담도암 1차 치료에서 쓸 수 있는 약은 젬시타빈과 시스플라틴 등 세포독성항암제밖에 없었다. 더발루맙이 나오기 전, 세포독성항암제를 뛰어넘는 신약이 무려 12년간 개발되지 않았다. 혁신적인 치료법이 없으니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담도암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7∼8개월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발루맙이 출시되며 말기 환자도 생존할 길이 열렸다. 더발루맙을 세포독성항암제와 함께 쓰면 환자 전체생존율이 2배 이상 개선되고, 환자 4명 중 1명은 2년 동안 생존할 수 있음이 TOPAZ­1 연구에서 확인됐다. 전홍재 교수는 “면역항암제를 담도암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1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들이 많아졌다”며 “면역항암제 효과를 본 환자는 약을 오래 쓴대서 약효가 떨어지지 않는 편이라, 면역항암제에 반응을 보이는 말기 환자라면 완치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암이 사라진 상태인 ‘관해’가 5년 이상 유지되면 완치로 판정한다.

더발루맙 병용요법으로 종양 크기 절반 이상 줄여

지난 6월 27일 CT 검사 결과 전은주씨의 종양 크기는 치료 이전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더발루맙 병용요법이 효과를 보인 것이다. 더발루맙과 세포독성항암제를 함께 투여한지 6개월이 지나면 더발루맙만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4주에 한 번씩만 약을 투여하면 된다. 세포독성항암제의 독성으로 인해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 수치가 떨어지며 열이 나는 부작용도 덜 수 있다.

전홍재 교수는 “4주에 한 번씩 면역항암제만 투여하면 환자 몸 상태도 개선되고 삶의 질도 높아진다”며 “전은주 씨도 이번 CT 검사 결과에서 암이 더 줄어든 게 확인되면 4주 간격으로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은주씨는 “건강할 땐 일하느라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며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을 시작하게 되면 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전은주씨〉

담도암 4기를 진단받고 치료 중인 전은주씨.

­더발루맙 병용요법을 진행할 때 몸 상태가 어땠나

탈모, 체중 변화, 구토 등 항암 치료의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치료를 받고 있다. 세포독성항암제로 인해 호중구 수치가 떨어져 고열이나 통증이 간혹 있었으나 견딜 만했다.

마음 관리는 어떻게 했나?

독서와 기도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죽음과 관련된 책을 주로 읽는 것 같다. 욘 포세 작가의 ‘아침 그리고 저녁’ ‘3부작’ ‘멜랑콜리아’ 등 작품들이 죽음에 대해 담백하게 묘사해 마음에 와 닿았다. 반려견도 도움이 됐다. 아프다는 이유로 움직임도 많이 없었고, 우울한 기분이 불시에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반려견을 입양한 후로 웃을 일이 늘었고, 산책을 시키면서 운동도 하게 됐다.

약값 부담은 없나?

현재 더발루맙은 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진 사보험과 환자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치료비 부담을 덜어왔다. 그러나 더발루맙을 이용한 치료를 1년 이상 지속하면 약값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생길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면 좋은 치료제가 있어도 병을 극복하기 힘들다. 담도암 환자들이 모두 자신과 잘 맞는 치료제를 시도해볼 수 있도록, 하루빨리 급여 적용이 되었으면 한다.

〈전홍재 교수〉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담도암 신약 개발이 왜 더뎠나?

그간 대부분의 항암제는 서양 주도로 개발됐다. 담도암은 아시아에서 발생률이 높다 보니 서양 다국적제약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치료 환경 개선이 더뎠다. 그러나 최근 한국 의료진들의 주도로 진행된 면역항암제 더발루맙 병용요법 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에서 좋은 결과가 확인돼, 새로운 국제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 더발루맙 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 성적은 어떠한가?

더발루맙 병용요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한 TOPAZ-1 연구에 의하면 더발루맙 병용요법은 치료를 시작한 지 3년째에 환자 전체생존율이 14.6%로, 기존 항암화학요법의 6.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TOPAZ­1 연구 참여 환자의 54.3%는 아시아인이었으며, 생존율 개선도 아시아인에서 더 우수했다. 아시아인에서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전체생존율 개선을 확인한 면역항암제는 더발루맙이 유일하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미국 등 11개 국가에서 666명의 환자가 참여한 대규모 리얼월드데이터(RWD) 분석 결과에서는 전체생존기간과 무진행생존기간이 임상시험 결과보다 더 뛰어나게 나왔다.

- 또 다른 면역항암제인 펨브롤리주맙 대비 더발루맙의 장점은?

우선, 아시아인에게 특히 효과적인 약제다. 더발루맙의 임상 3상은 국내 연구자들이 주도했고,임상 참여 환자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었다. 한국인 환자도 120명가량 참여했다. 하위 분석에 따르면 다른 인종보다 아시아인에서 치료 효과가 더 좋았다.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지표들에서 더발루맙이 더 우수한 성적을 보이기도 했다. 펨브롤리주맙은 환자의 전체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확인됐으나, 질환이 더 진행되지 않은 채 환자가 생존하는 기간인 ‘무진행생존기간’을 유의미하게 연장함을 입증하지 못했다. 반면, 더발루맙은 두 지표 모두 개선하는 것이 확인됐다. 세포독성항암제와 병용 투여한 지 6개월이 지난 후 단독으로 투여할 수 있는 면역항암제 역시 더발루맙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