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해양경찰청장이 지난 3월 9일 통영 욕지도 남방 37해리 해상에서 전복된 선박 사고 현장을 찾아 구조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서양 문학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는 1843년 딸이 사망하자 슬픔에 빠져 10년 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딸은 사위와 함께 센강을 건너던 중 돌풍으로 보트가 침몰하면서 익사했다. 문득 ‘빅토르 위고의 딸과 사위가 당시 구명조끼를 입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봤다.

지난 3월 8일 밤 풍랑주의보로 강풍이 몰아치는 욕지도 남쪽 해상에서 어선 한 척이 사나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다 전복됐다. 뒤집힌 어선이 다음 날 아침 발견되기까지 SOS 구조신호는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구조를 바랐을 9명의 선원 중 4명은 구명조끼 없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5명은 지금까지도 실종 상태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하고 실종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면서 해양 구조기관의 수장으로써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망망대해에서 발생하는 해양 사고를 신속하게 확인하고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또 다른 사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3월 17일 포항 구룡포 동쪽 바다에서 어선 한 척이 귀항 중 3m 내외의 큰 파도에 전복됐다. 당시 선장은 사고 위험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SOS 구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선원들과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이동했다. SOS를 수신한 해양경찰은 2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승선원 6명 중 5명을 구조했다. 하지만 1명의 선원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처럼 바다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장소다. 따라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과 해양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욱 철저히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해양 안전을 책임지는 해양경찰청장으로서 안전한 바다 활동을 위해 두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먼저, 바다에서는 항상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한다. 현행법상 어민들은 기상특보가 발효되면 갑판에 있는 경우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 하지만 조업하는데 거추장스러워 대부분 착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명조끼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2018년부터 1인 승선 어선과 20t 미만 어선의 갑판 작업자는 모두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했다. 처벌도 더욱 강화하면서 우리나라보다 강도 높은 안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은 2022년 전체 어선 대비 인명피해 비율이 0.06%로 우리나라 0.13%보다 2배 이상 낮다. 구명조끼 착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SOS 구조버튼’을 눌러야 한다. 레저 선박이나 연안 이용객들은 ‘해로드앱’과 ‘바다내비앱’으로 SOS 구조요청을 할 수 있다. 선장은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V-Pass ▲VHF-DSC ▲바다내비 ▲D-MF/HF 등 위치 발신 장치의 SOS 버튼을 3초 이상 누르면 된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최근 5년간 선박사고의 SOS 신고는 5%에 불과하다. SOS 구조 버튼을 이용한 조난신고는 ▲불필요한 전화번호 검색 ▲통화 연결 ▲사고 위치 전달 등으로 인한 지체시간이 없다. 간결하고 신속·정확하게 사고 위치를 구조기관에 전달해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안전 의식을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차량 안전띠 장착은 지난 1978년 처음 의무화됐다. 택시와 시외버스까지 안전띠 착용이 정착되기까지 무려 34년이 걸렸다. 그러고도 2018년이 되어서야 전 좌석 착용 의무가 생겼다. 이렇듯 사회적 안전불감증을 고치거나 인식을 개선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고, 손가락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계속되면 우물에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노적성해·露積成海)’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안전 사항을 조금씩 실천해 나간다면 큰 재난에서 많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김종욱 해양경찰청장

해양경찰은 안전 의식을 높이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SNS를 통한 국민 참여 릴레이 챌린지 등 홍보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해양 사고는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안전 의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구명조끼 착용’과 ‘SOS 구조 버튼 누르기’를 잊지 않으면 안전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