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로의 여행은 눈을 즐겁게 한다. 비운의 왕 단종의 슬픔이 서린 ‘청령포’와 ‘장릉’부터 눈길 머무는 곳곳이 미술관인 ‘젊은달 와이파크’, 밤하늘 보석처럼 영롱한 별빛 잔치를 감상할 수 있는 ‘별마로천문대’까지 발길이 멈추는 모든 곳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영월로 여행을 떠나보자.
◇비운의 왕, 단종 유배지 ‘청령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인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됐던 곳이다. 서강이 삼면을 휘감아 돌고, 다른 한쪽엔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버티고 선 탓에 청령포를 가려면 배를 타야만 한다. 육지 속 작은 섬인 셈이다. 배를 타고 청령포에 발을 내딛으면 짙은 솔향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은 장관을 연출한다. 이 같은 아름다움에 청령포의 숲은 지난 2004년 산림청의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단종이 유배 당시 생활했던 단종어소(端宗御所)가 나온다. 실제 건물은 세월의 풍파에 사라졌지만, 발굴조사와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재현됐다.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등이 살던 행랑채로 이뤄져 있으며, 밀랍인형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표현해 놓기도 했다. 단종어소 앞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란 글이 새겨진 유지비가 있다. 단종이 머물던 옛 집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비석이다. 본래 있던 건물이 소실되자 영조 39년 어소가 있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이곳에선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영월 청령포 관음송’도 볼 수 있다. 높이 30m로 국내에서 가장 큰 소나무다. 청령포 관음송의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생김새도 특별하다.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청령포 관음송은 아랫부분에서 줄기가 둘로 나뉘어진다. 한 줄기는 하늘로 곧게 뻗어올랐고, 다른 줄기는 비스듬히 누워있다. 청령포로 유배온 단종은 관음송에 걸터앉아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관음송을 지나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며 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과 바위 언덕인 노산대(魯山臺)를 마주한다. 노산은 단종이 왕에서 군(君)으로 강등됐을 당시 칭호다. 단종은 이곳에 올라 한양쪽을 바라보며 유배생활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단종이 영면한 곳, 세계유산 ‘장릉’
장릉(莊陵)은 단종이 영원한 안식에 든 곳이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이 서울·경기지역에 자리해 있지만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은 단종의 왕릉만 유일하게 강원도에 있다. 이곳은 1970년 사적 제196호로 지정됐으며, 2009년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지난 2002년 장릉 입구엔 단종역사관이 들어섰다. 단종의 왕세자 책봉부터 즉위, 유배와 죽음, 단종대왕 복권까지 단종의 일대기를 접할 수 있다. 단종을 위해 충절을 지킨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의 저서도 볼 수 있다. 역사관 특별전시실엔 세종과 단종의 태실(胎室)에 관한 기록인 ‘세종대왕·단종대왕 태실 수개의궤’가 전시돼 있다. 태실은 잘라낸 탯줄을 묻은 곳을 말한다. 조선 왕실에선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실을 만들어 탯줄을 묻고 중히 여겼다. 조선시대 왕세자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와 유배 길에 오른 단종 일행을 표현한 밀랍인형도 눈길을 끈다.
단종역사관을 나와 발길을 옮기면 왕릉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단종의 무덤은 여느 조선 왕릉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고 241년만에 왕에 복권된 단종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장릉엔 왕릉 외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葬版屋)과 능을 관리하는 능지기가 머물던 수복실(守僕室), 단종대왕릉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건물인 단종비각(端宗碑閣) 등이 있다. 22m 높이의 느릅나무도 볼 수 있다. 느릅나무의 수령은 370년으로 추정된다.
◇MZ세대 인증샷 성지… ‘젊은달와이파크’
지난 2019년 문을 연 젊은달와이파크는 영월군 주천면에 있던 술샘박물관을 재생공간으로 재 탄생시킨 곳이다. 공간디자이너 최옥영 작가의 공간기획으로 이곳은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과 박물관, 공방이 합쳐진 복합예술공간이 됐다. 젊은달와이파크는 개장 다음해인 2020년 ‘한국 관광의 별’을 거머쥐었다.
입구에선 SNS를 도배한 사진 명소인 붉은 대나무 숲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최옥영 작가의 작품으로, 붉은 대나무 숲은 빨간색을 입힌 금속파이프를 이용해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금속파이프의 모습이 마치 대나무와 흡사하다. 빨간색은 녹색의 산, 파란 하늘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매표소를 지나면 소나무 장작더미로 만든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최옥영 작가의 작품 ‘목성(木星)’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목성은 강원도에서 난 소나무 장작을 엮어 만든 대형 돔이다. 나무 더미 사이로 새어드는 빛줄기는 광활한 우주를 연상케 한다.
목성을 지나면 5개의 각기 다른 주제로 꾸며진 미술관이 나온다. 사방 가득 오색 찬란한 꽃 잔치가 펼쳐지는가 하면, 새로운 세계로 연결될 듯한 신비로운 나무 터널도 만난다. 미로 같은 동선을 쫓아 관람을 이어가다 보면 눈앞에 거대한 철재 구조물이 나타난다. ‘붉은 파빌리온’이다. 철재 계단을 따라 오르면 탁명열 작가의 ‘푸른 사슴’이 눈에 들어온다.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강렬하다. 천장에는 그물망 안에 사람이 들어가 이동하며 놀 수 있는 ‘스파이더 웹 플레이 스페이스’가 설치돼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창살 같은 붉은 파이프 사이로 영월의 푸른 자연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바람의 길’, 거대한 나무토막을 연결해 만든 마리오네트 등도 있다. 이곳에선 채색 체험을 비롯해 초콜릿과 쿠키 만들기, 나무 공예 등 다채로운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영월 관광의 시작점, 영월관광센터
지난 2021년 10월 문을 연 영월관광센터는 강렬한 붉은색, 기하학적 구조의 입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월관광센터는 다양한 전시와 체험, 영월의 특색 있는 먹을거리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영월관광센터는 영월군과 삼척시, 태백시, 정선군 등 강원 남부 폐광지역 4개 시·군의 관광 홍보를 위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영월읍 초입에 자리해 영월 관광의 관문이기도 하다. 1층엔 로컬 푸드 매장과 푸드 코트 등이 자리해 있다. 영월에서 생산되는 어수리와 눈개승마 등 산나물부터 장류, 주류, 꽃차 등 농·특산물과 가공식품을 한눈에 둘러보고 구입할 수 있다. 푸드 코트에선 영월의 특산물로 맛을 낸 먹을거리도 맛볼 수 있다. 폐광지역 4개 시·군의 관광 안내 자료도 비치돼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다. 2층엔 미디어체험관이 자리해 있다. 조선시대 민화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 등이 사방에서 영상으로 뿜어져 나온다.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는 상설전시관도 있다.
뮤지엄 숍에선 민화 영인본과 수첩, 손거울, 머그컵 등 민화 디자인을 입힌 상품을 살 수 있다. 영월의 관광 명소를 테마로 한 일러스트 엽서 등 영월 여행을 기념할 만한 상품도 있다.
화이통 꽃차 체험관에선 돌과 철사를 이용해 화분과 향수 등을 만들어 볼 수 있고, 꽃차를 덖어볼 수 있다. 3층엔 커피와 차 등을 마실 수 있는 카페와 청령포 등의 풍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옥상 정원이 있다.
◇밤하늘 속으로 떠나는 별빛여행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봉래산엔 지난 2001년 문을 연 별마로천문대가 있다. 별마로란 이름은 ‘별’과 정상을 뜻하는 ‘마루’, 한자 ‘고요할 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란 뜻을 갖고 있다.
연간 쾌청일수 192일을 자랑하는 해발 799.8m에 자리한 별마로천문대는 최상의 관측조건을 자랑한다. 지난 2006년엔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오며 국내 대표 별 관측 명소가 됐다.
별마로천문대는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3개월간의 새단장을 마치고 지난 2021년 12월 재개관했다. 천체 관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천체투영실과 천체관측실을 제외하고 모든게 바뀌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와 은하수의 물결이 펼쳐진다. 우주의 탄생을 표현한 미디어 아트도 시선을 붙든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비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관람객이 별이 떨어지는 포인트에 서서 소원을 빌면 천장에 설치된 별 조형물 사이로 별이 떨어진다.
천체투영실에선 돔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상 별자리를 보며 별자리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천체관측실에선 천체망원경으로 주간엔 태양, 야간엔 달과 별, 성운 등을 관측한다. 기상이 좋지 못한 날엔 기초 천문학 강의로 대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