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전력공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천연가스·석탄·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전기를 생산·구입하는 원가 부담은 크게 늘었지만, 전기 요금 인상 폭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천문학적인 적자는 누적됐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도 한전은 지난해 생활 밀착형 수요관리·효율화를 추진하고, 원가연계형 요금제도를 정착시키며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에너지 효율 향상…단계적 전기요금 인상
한전은 지난해 8월부터 ‘식품 매장 냉장고 문(Door) 달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대형마트·편의점 등에 있는 냉장식품 진열·판매용 개방형 냉장고에 문을 설치해 에너지 효율 향상과 식품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사업이다. 한전 관계자는 “냉장고에 문을 달면 10℃ 이하에서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며 “전기 소비를 줄여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에 따르면 전국 대형마트·편의점 등에 있는 개방형 냉장고는 50만4323대, 이를 모두 도어형으로 교체하면 1대당 연간 3.5MWh(메가 와트시)만큼 전기를 아낄 수 있다. 1년에 1780GWh 규모로 48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한전은 이뿐만 아니라 주물·단조·열처리·도금 등 전기 소비가 많은 뿌리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 다소비 기기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앞으로는 산업과 건물 부문의 노후설비를 효율이 높은 설비로 교체할 때 기기 금액의 일부를 지원하는 고효율 기기 지원 사업도 펼친다.
한전은 지난해 국제 연료비 급등을 반영해 약 9년 만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천문학적인 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2023~2024년 흑자 전환, 2025~2026년 누적 적자 해소, 2027년 정상화로 이어지는 로드맵도 내놨다. 한전 관계자는 “요금을 올리면서도 취약계층에 대해선 복지 할인 한도를 40% 확대하고, 1년간 요금을 동결했다”며 “영세 농어민에 대해서도 3년간 요금을 분할 지급할 수 있도록 해 요금 상승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을 비롯한 전력그룹사들은 지난해부터 2026년까지 5년간 총 20조원의 재정 건전화 계획을 수립하며 자구 노력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의정부변전소 부지 매각, 석탄발전 가동 확대 추진에 성과를 낸 데 이어 올해는 해외 사업을 재편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매각자문사 선정을 마친 한전기술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지분 매각 일정을 진행한다.
◇중대사고 크게 줄어…전력 수출 산업화 견인
한전은 올 들어 매월 안전경영회의를 열고, 경영진 지역전담제를 구성했다. 이 결과 2021년 10명이었던 중대 사망사고는 지난해 3명에 그쳤다. 한전 관계자는 “경영진이 전담 지역을 맡아 연간 27만여 건에 달하는 공사 현장의 안전을 살폈다”며 “앞으로도 한전은 물론 협력사까지 안전경영시스템을 정착시켜 ‘근원적 해법’을 찾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13년간 지연됐던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사업도 주민·지자체·전문가 등과 장기간 협의 끝에 착공을 이끌어냈다. 한전은 호남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직접 수송할 수 있도록 ‘서해안 HVDC 백본망’도 구축할 예정이다. 법 제도를 통해 대규모 설비의 무분별한 수도권 신설을 억제하고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전력 산업 분야에서는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2호기가 지난해 3월 상업운전을 한 데 이어 올 2월에는 3호기가 가동을 시작했다. 한전 관계자는 “CEO(최고경영자)가 2021년 6월 취임한 이후 코로나 기간이었지만 지난 1년 9개월 동안 UAE를 세 번 찾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며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상업운전 시기를 1년가량 단축했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또 “베트남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 완공한 데 이어 UAE HVDC 송전망 사업, 괌 태양광 사업도 재원 조달을 끝내고 건설에 들어간다”면서 “원전과 화력발전을 중심으로 송배전망, 해상풍력, 그린수소·암모니아 등 신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며 최근 부진에 빠진 수출 회복과 국가 경제 발전에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