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반평생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 나이와 의사 나이가 비슷해진다고들 한다. 병원에 내원한 연세 드신 분들이 젊은 친구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여기가 내가 진료할 병원이 맞나?’ 하며 걱정하셨던 기억이 난다. 의사 나이가 오십이 넘어가면 환자군도 젊은 사람이 반, 연세 드신 분들이 반 정도로 균형 잡힌 진료가 이뤄진다. 10대부터 최고령인 90세분까지 수술하고 느낀 점은 ‘우리네 인생’에 대한 것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와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모습을 재밌게 보다가도 연세 드신 환자가 눈이 잘 안 떠지는 증상을 진찰받고 놀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최근 오른쪽 눈을 못 뜨는 안검하수 환자가 쌍꺼풀 수술을 더 크게 하고 싶다며 병원에 방문했다. 수술 부작용을 설명하니 그래도 더 크게 하고 싶다며 아기처럼 투정도 부리셨다. 연세가 드셨어도 눈망울, 말씨 그리고 손동작에서 환자 마음속에 있는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네 인생이 비쳤기 때문이다.
설명이 끝나자 옆에 서 계셨던 남편분은 “나중에 원장님이 마지막으로 하라고 할 때 해요. 이제 가요” 하며 부인의 손을 꼭 잡고 가셨다. 많은 날을 진료하면서 노신사께서 사랑스럽게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부부의 뒷모습을 되새겼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젊은이가 살지만 거울을 쳐다보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자신의 젊은 모습을 꺼낼 수 있다. 성형외과 의사는 자연의 법칙에 잠시 정지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다. 자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안전하고 또 자연스럽게 환자 한 분 한 분 소중한 마음으로 정성껏 진료하는 사람이다. 새해 첫 글. 따스함을 전해준 노부부께 감사의 글로 새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