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뷰티 기업 APR의 김병훈 대표(34)는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피부과 관리를 집에서 좀더 저렴하게 편하게 해결할 순 없을까….”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2년쯤 걸려 시제품을 내놨다. 몇번의 테스트 끝에 지난 3월,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에서 만드는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을 론칭했다. 20만~30만원대 기기인 에이지알은 올해에만 40만대가 팔렸다. 작년 1050억원 매출을 달성한 메디큐브는 지난 9월 이미 작년 실적을 넘어섰다. APR의 작년 전체 매출은 2590억원, 영업이익은 142억원이다. 메디큐브 외에도 화장품 브랜드 ‘에이프릴스킨’, 패션 브랜드 널디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달 서울 잠실 APR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훈 대표는 "매년 200%씩 회사가 성장하고 있지만, 실적보다 중요한 건 혁신적인 변화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라면서 "뷰티·스타일 테크 기업으로 진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김지호 기자

지난 달 서울 잠실 본사에서 만난 김병훈 대표는 “올해 매출 4000억원, 영업이익 30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APR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743억원이었다. 다가오는 3분기 매출(가결산)은 960억원, 영업이익은 14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학 휴학하고 시작한 사업…'틈새’에 답이 있었다

APR은 김 대표가 연세대 경영학과를 휴학하고 2014년에 창업한 회사다. 경영학이 좋아 대학에 들어갔지만 회계와 재무 중심으로 배우는 학과 공부는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다. 뭘 잘할 수 있을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컨설턴트나 회계사가 돼도 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고, 운동선수들처럼 몸을 잘 쓰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녔다. 고민해 보니 그래도 내가 오래 앉아 버티는 건 잘하더라. 뭐든 한번 시작한 건 끝은 보는 편이었다. ‘그러면 사업을 해야겠구나’ 싶었다(웃음).”

대학 시절 데이트 주선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로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사업에 몇차례 도전했으나 번번이 잘 안 됐다. 2014년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 붐이 일었다. 시장성을 따져보니 틈새가 보였다. 소셜미디어 채널을 적극 활용해서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면 될 거라고 봤다. “학교를 더 다닐 필요를 못 느낄 때였다. 대학을 휴학했고 곧바로 새 사업을 시작했다.”

'메디큐브'의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 / APR 제공

화장품 브랜드 ‘에이프릴스킨’을 시작했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중국 내 한국 화장품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할 무렵엔 더마 화장품(의약품 성분이나 전문 의약 기술을 접목한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를 새롭게 출시했다.

피부과를 대체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 중국 시장이 위축돼도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지난 3월엔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까지 내놓으면서 메디큐브는 APR에서도 가장 매출이 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김 대표는 “올해 상반기 메디큐브 매출은 전년보다 159%나 성장했다”면서 “남들이 한쪽 시장이 다같이 위축된다고 걱정할 때 반대급부를 찾았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APR의 스트릿 패션 브랜드 '널디'(왼쪽)와 더마 화장품 브랜드 / APR 제공

◇해외 진출 성과도

2017년엔 패션 브랜드 널디를 시작했다. ‘아이유 트레이닝 복’ ‘태연 트랙 세트’로 알려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다. 김 대표는 “널디 역시 시장 확장성을 봤다. 뷰티 브랜드를 통해 확보한 젊은 소비자들은 스스로를 꾸미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스타일 제품을 파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사업 반경을 넓혀갔다”고 말했다. 널디는 최근 K팝·K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K패션도 각광 받으면서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가파르게 팔려나가고 있다. 2019년 4월에는 일본 하라주쿠에 널디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다. 널디의 작년 매출은 950억원이다. 김 대표는 “2019년부터 해외 진출을 공격적으로 해왔던 것에 대한 성과가 이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APR은 내년 기업공개(IPO)에 나설 예정이다. 김병훈 대표는 “실적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최근 주식 시장 상황은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메디큐브 에이지알 디바이스 개발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도 계속 주력해 나갈 생각이다. 김 대표는 “궁극적으로 뷰티·스타일 테크 기업으로 진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가령 디바이스 사용자가 바빠서 사용 시기를 놓치거나 게을러지게 되면 애플리케이션이 이런 것도 알람으로 알려주고 체크해주는 기능을 갖추는 거죠. 혁신적인 서비스를 계속 정교하게 개발해서 내놓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