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인형극을 보자. 피노키오 인형의 팔과 다리 마디마디에 실이 묶여 있다. 사람이 상자 위에서 그 실을 풀거나 당기며 조종한다.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피노키오는 실이 끊어지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툭 떨어진다. 사람에게도 이러한 피노키오 실이 있다. 걷다가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나의 피노키오 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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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피노키오의 실은 근육이다. 근육으로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꼭두각시 인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인형극에서는 사람이 피노키오의 관절을 직접 보면서 실을 조종하는 반면 우리는 굳이 보지 않고도 발목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근육 안에 움직임과 위치를 감지하는 수십만 개의 감지기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근육에 분포하는 근방추(muscle spindle)가 근육의 길이 변화를 감지해 고유수용감각기(proprioceptor·눈 감아도 몸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하는 감각)로서의 역할을 한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도 움직이고 가려운 곳을 긁거나 만질 수 있는 이유이다.

이 근육 속 움직임·위치 감지기가 손상되면 몸의 방향을 잃어 휘청거리게 된다. 피노키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눈 감고 있는 것과 같다. 기능이 심하게 손상되면 사지(四肢)를 인식하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근육 속 움직임·위치 감지기(근방추) 기능은 ▲노화로 인한 감각 저하 ▲디스크 탈출·협착증, 중풍 등에 의한 신경 손상 ▲안 좋은 어깨로 계속 골프 스윙을 하는 등 반복된 손상 ▲수술 등으로 약화된다. 감지기가 손상되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근육의 긴장이나 통증이다. 통증만 없애려 하면 쓸데없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십상이지만, 근육 속 움직임·위치 감지기를 치료하면 통증은 저절로 없어지고 관절도 부드러워진다.

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매달 2회씩 카타르 군사령부 내에서 만성통증 병원을 위탁 운영했다. 카타르 정부의 초청으로 왕족을 비롯한 국가 VIP와 군인 가족을 진료했다.

지난 2019년 11월 카타르 군사령부 내에 있는 만성통증 병원에서 아이샤 자심 F.J 알 사니(오른쪽) 공주가 치료 받은 후 안강 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안강병원 제공

어느 날 병원에 60대의 아이샤 자심 F.J 알 사니(Aisha Jassim F.J Al Thani) 공주가 찾아왔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발바닥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힘겹다는 것이다. 아이샤 공주는 “발 통증 때문에 가벼운 산책과 쇼핑조차 어렵다”고 털어놨다. 전 세계를 돌며 유명 의료진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족저근막염 등 다양한 진단을 받고 치료했지만, 날이 갈수록 걷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피노키오의 실이 끊어지거나 늘어난 곳을 찾기 위해 발바닥부터 허리까지 차근차근 손으로 확인해보았다. MRI에 드러난 이상 징후도 살폈다. 아이샤 공주는 발바닥 고통만 호소했지만 발뒤꿈치·종아리·허벅지·엉덩이에도 단단한 근육의 띠가 만져졌다. 발목의 운동 범위도 좁아져 있었고, MRI상으로는 힘줄이 두꺼워진 게 보였다. 다행히도 관절 자체의 손상은 심하지 않았다. 근육이 긴장되고 힘줄이 두꺼워진 이유는 근육 안에 박혀있는 움직임·위치 감지기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발바닥 통증(족저근막염)은 단지 결과일 뿐이다. 발 통증은 발바닥에 연결된 피노키오 실과 그 안에 있는 움직임·위치 감지기를 치료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긴장된 근육이 풀어지고 두꺼워진 힘줄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움직임·위치 감지기도 회복되고 발 통증도 사라지리라 믿었다. 실제로 치료 후 아이샤 공주는 빠르게 회복해 웬만한 스포츠를 다 즐길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VIP 환자들은 치료 후 경과가 아무리 좋아도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그런데 아이샤 공주는 치료 후 상태가 좋아진 것을 널리 알려달라고 했다.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녀의 훌륭한 인품과 앞선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샤 공주의 마음에 공감하며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 몸에서 피노키오를 움직이게 하는 실의 역할은 근육이 담당한다. 이 근육 속 움직임·위치 감지기는 오감(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에 이은 여섯 번째 감각으로, 단언컨대 미래 의학의 핵심이 될 것이다. 없어진 근육을 살리고 파괴된 뇌를 살리며 아픔을 치료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