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DB

송편은 추석을 대표하는 절식(節食)이다. 옛날부터 그렇진 않았다. 추석이 아닌 다른 명절에도 먹었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는 뜻이다. 이 유쾌한 제목의 책은 ‘홍길동전’의 저자이기도 한 허균이 1611년 썼다. 전국 팔도의 별미와 토산품을 기록했다. 이 책에서 허균은 송편을 ‘봄에 먹는 음식’으로 소개했다. 도문대작뿐 아니다. 19세기 초 문인 조수삼은 ‘추재집’에서 ‘정월 대보름 솔잎으로 찐 송편으로 차례를 지낸다’고 적었다. 이 밖에도 초파일·단오 등에도 송편을 빚어 먹는다고 기록됐다.

송편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추석에 먹던 송편은 ‘오려 송편’이라 했다. ‘오려’는 올벼의 옛말. 올벼는 일찍 익는 벼를 말한다. 그러니까 ‘올해 농사지어 수확한 햅쌀로 빚은 송편’이란 뜻이다.

‘노비송편’은 남자 어른 주먹만 하게 큼직하게 빚은 송편이다. 음력 2월 초하루 중화절(中和節) 날 먹었다. 중화절은 조선 시대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날 주인집에서는 ‘농사일 잘해달라’는 의미로 노비송편을 노비와 머슴들에게 나이 수대로 나눠줬다. 그래서 ‘나이떡’이라 불리기도 했다.

추석 밤하늘에는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뜬다. 그런데 송편은 보름달처럼 둥글지 않고 반달 모양이다. 음력 8월 15일 보름달을 보며 추수를 감사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보편적 풍습.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르는 중국에서는 월병(月餠)을 굽고, 십오야(十五夜)라고 하는 일본에선 쓰키미당고(月見団子)를 빚는다. 월병과 쓰키미당고는 모두 보름달마냥 동그랗다.

왜 한국의 ‘달떡’인 송편만 동그랗게 빚지 않고 반원 모양일까. 여러 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백제 의자왕과 관련됐다. 어느 날 의자왕이 귀신이 땅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신이 사라진 자리를 파보니 거북이 나왔다. 거북 등에는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고 새겨져 있었다. 무당은 “둥근 달과 같다는 건 가득 차 기운다는 것이며, 초승달과 같다는 건 점차 가득 차게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의자왕은 크게 화내며 무당의 목을 베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이후 기울 보름달보다는 차오르는 반달 모양으로 송편을 빚게 됐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한국인의 성정(性情)과 관련됐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완벽을 꺼렸다. 그래서 완벽한 원 대신 반원 모양으로 만들게 됐다는 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그럴 법하다고 생각한다. 달항아리라는 조선백자가 있다. 커다란 반원형 그릇 2개를 이어 붙여 빚는 달항아리는 완벽한 동그라미가 아니라 살짝 일그러져 있다. 기술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한민족은 태생적으로 완벽함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는 게 미술사학자들의 해석. 송편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