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귀중한 자료들을 기증받는 일은 주는이와 받는이의 공감이 있으면 더욱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이 가장 소중한 에피소드로 꼽는 것은 이상화 시인이 1930년대 독립운동을 함께 한 민족지사 김정규에게 선물한 ‘죽농 서동균 10폭 병풍’이다.
시작은 작년말 기증자인 김종해(83)씨의 전화 한통에서 비롯됐다. 아카이브팀이 달려가보니 김정규 지사의 셋째 아들인 김씨는 선친이 1974년 별세하기 전까지 “상화 시인이 선물한 것”이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10폭 병풍 안에는 금강산 내 9개의 담(潭·못)을 노래한 시가 흘림 글씨로 쓰여져 있다. 조선 철종 때 학자인 난사 최현구가 쓴 이 시는 ‘금강산 구곡담 시’다. 대구의 이상화 시인이 서예가 죽농 서동균 선생에게 부탁해 독립운동가 김정규 지사에게 보낸 선물이었던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에서 활약한 청년이었다. 전문가들은 예술과 독립운동을 통해 교류하던 세 사람이 병풍을 통해 마음을 나눈 것으로 보고 있다.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담당은 “오래도록 보관했던 소중한 작품의 기증을 결심해 주신 김종해 선생님께 감사하다”며 “병풍에 담긴 이야기의 힘이 대구의 근대 문화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근현대 문화예술 잡지를 기증받는 과정에서 서울의 기업가인 이인석 이랜드 고문의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이 고문은 고서적으로 팔려나갔던 남성 1세대 현대무용가 김상규 선생의 예술 활동 자료를 대구시에 기증하기 위해 돈을 들여 구입하기까지 했다. 그는 올해 대구와 관련된 수집 자료들을 더 많이 기증하기로 약속해 놓고 있다.
그밖에도 대구 오페라의 초석을 놓은 고 이점희 선생 유족이 기증한 피아노, 축음기, 공연 자료 등도 귀중한 자료들이다. 대구시향 초대 지휘자 이기홍 선생의 유가족도 기증행렬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