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은 생각보다 잘 녹지 않는다. 얼음 1㎏을 녹이는 에너지는 섭씨 1064도에서 녹는 금 1㎏을 완전히 녹일 수 있다. 고대 로마인들이 알프스의 얼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 것도, 우리 조상들이 겨울에 얼음을 석빙고에 넣어두고 여름에 썼던 것도 모두 이를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얼음이 녹는 간단한 변화조차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에서 변화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은 엔트로피이다. 인류가 엔트로피를 알게 된 것은 어느 양조업자와 천재 과학자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다.
알프스 폭포에서 시작한 실험
1847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수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은 알프스 여행을 갔다가 폭포에서 웬 남녀가 실험하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한다. 다가가 보니 며칠 전 학회에서 만난 양조업자 제임스 줄(James Joule)이었다. 정식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실험에 뛰어났던 줄은 이 학회에서 '열(熱)과 일(work)이 같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과학자의 주장은 완전히 무시당한다. 열 살에 대학에 들어간 신동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던 톰슨 역시 줄의 주장에 부정적이었다. 신혼여행 중이던 줄은 자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개발한 정밀 측정기를 짊어지고 새댁인 아내와 폭포 온도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무모하지만 줄의 열정에 감동한 톰슨은 공동 연구를 제안한다.
당시 열에 대한 주류 학설은 칼로릭(caloric) 이론이었다. 뜨겁고 차가운 것은 칼로릭이 많고 적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오늘날까지 열량을 '칼로리'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몰락을 지켜본 프랑스 군인 사디 카르노(Sadi Carnot)는 조국 프랑스가 영국에 패배한 원인을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보고 증기기관을 집중 분석했다. 톰슨은 사디 카르노의 연구를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있었다. 카르노는 물이 낙하하며 물레방아를 돌리듯 고온에서 저온으로 칼로릭이 이동하며 증기기관이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줄의 주장대로 열과 일이 같다면 에너지 보존 법칙에 어긋난다. 증기기관에서 발생한 일도 칼로릭이라고 해 버리면 전체 칼로릭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톰슨을 비롯한 학계가 줄의 주장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다.
양조업자 주장, 기존 이론 무너뜨리다
줄은 톰슨의 조언에 따라 추가 실험을 지속한다. 양조업자 줄의 실험에 스타 과학자 톰슨의 이론이 결합하자 학계에서 열과 일이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퍼진다. 하지만 칼로릭 이론은 줄의 주장과 모순되므로 학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1850년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가 줄을 지지하는 연구를 발표한다. 클라우지우스는 줄의 주장이 사디 카르노의 이론을 훨씬 쉽게 설명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100이라는 에너지의 고온에서 에너지 70인 저온으로 열이 이동할 때 그 차이 30을 일이라고 하면 간단하다. 즉, 열과 일이 같다는 주장만 받아들이면, 굳이 칼로릭 없이도 증기기관에서 전체 에너지 100은 보존된다. 무시당하던 양조업자의 주장은 톰슨과 클라우지우스 두 교수의 뒷받침으로 칼로릭 이론을 무너뜨려, 불과 몇 년 만에 열과 일의 동등성이 대세가 된다. 한껏 기세가 오른 줄과 톰슨 두 사람은 1852년 냉장고와 에어컨의 원리가 되는 '줄-톰슨 효과'를 발표한다. 이 무렵 톰슨은 냉장 효과로 아무리 온도를 내려도 영하 273도 이하는 불가능하다는 '절대온도'를 발견한다. 나중에 대서양 해저 케이블로 국가적 영웅이 된 톰슨 교수는 남작 작위를 받는데, 요트가 취미였던 그는 근무하던 글래스고 대학을 지나는 켈빈강을 작위 이름으로 정했다. 이후 윌리엄 톰슨은 '켈빈 경(Lord Kelvin)'이 되어 절대온도의 단위는 '켈빈(Kelvin, K)'으로 부른다. 폭포에서 온도를 재던 양조장 주인 이름은 에너지 단위 '줄(Joule, J)'이 되었다.
주목해야 할 '엔트로피'의 메시지
한편 클라우지우스는 모든 변화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만 흐른다. 그리고 열의 이동으로 발생한 일을 다시 열로 바꾸려면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투입된 에너지보다 큰 출력은 만들 수 없을뿐더러, 효율 100%도 불가능하다. 클라우지우스는 이러한 변화의 비가역적인 양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며 '엔트로피(entropy)'라고 이름 짓고, 엔트로피의 기호는 사디 카르노를 존경하는 의미로 그의 이름 첫 글자 'S'로 정했다. 엔트로피는 클라우지우스가 '변환'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trope'에서 만든 단어이다. 비가역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원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고, 시간이 흐르는 한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
오늘날 엔트로피만큼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과학 용어도 드물다. 미시적 세계에서 엔트로피를 규정한 ‘무질서도’를 엔트로피 증가 법칙과 결합해서, 인간 사회가 혼란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문명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엔트로피 증가는 인간만의 일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 전체에서 진행되는 현상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자연에 엔트로피를 더하긴 하겠지만, 얼음이 녹는 작은 변화에서조차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듯이 자연이 뿜어내는 엔트로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엔트로피의 메시지는 비관적인 인류의 운명이 아니라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변화는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보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